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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서 환생한 이승만김춘길 주필 겸 대기자
김춘길  |  kck90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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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25  15: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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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재 청남대에서 47년 전에 타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환생(還生)했다. 찬반 논란 속에 충북도가 청남대 명소화 및 관광활성화 등의 목적으로 기획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전시 주간 행사가 지난 24일부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시발로 개막돼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이승만 대통령 주간 행사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영상 상영, 도서 전시회, 이 대통령의 충북 방문 기록과 충북의 주요 사업, 이 대통령 희귀 사진 및 도서 전시, 휘호 쓰기 행사 등이 개최되고 있다.

24일은 한국 초대 대통령 취임(1948.7.24) 기념일이다. 그래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주간이 이날부터 막을 올려 일주일간 계속된다. ‘이승만 주간’을 여는데 대한 당부(當否)는 일단 논외로 하고, 우리 국민들로부터 ‘건국의 국부(國父)’-‘부정선거 독재자’라는 상반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승만은 누구이며 어떤 공과가 있는가.

이승만 전 대통령(1875.3.26~1965.7.19, 이하 이승만))은 황해도 평산 출생으로, 세종대왕의 형인 양년대군의 16대손이다. 1~3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은 일제강점 시 국내는 물론 중국·미국 등 국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조국 광복 이후에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초대에서 3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다 부정선거로 4선의 됐지만 4.19혁명으로 하야, 하와이로 망명했다 생애를 마쳤다.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내려졌으나 지금도 갑론을박 중이고, 그 공과(功過)를 여기서 상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승만의 대통령 재직 중 대표적 공으로 우선 ‘반공포로 석방’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반공포로 석방은 한국 대통령과 국민들의 반대 속에서도 미국이 6.25 전쟁 휴전회담을 급속히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이승만은 미국에 사전에 알리지 않고 1953년 6월 18일 새벽 0시를 기해 영천·대구·상무대·논산·마산·부산·부평 등 7개 수용소에 있던 3만 7천 명 중 남한 및 북한 출신 반공포로 2만7092명을 석방 시킨 쾌거이다.

다음 공으론, 우리나라 연안 수역 보호를 목적으로 1952년 1월18일 국무회의를 거쳐 단행한 ‘평화선 선언’을 들 수 있다. 일본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 측과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맥아더 장군이 ‘맥아더 라인’으로 체결한 일본의 어업은 일본 본토 주변의 정해진 선을 벗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체결이 끝나갈 즈음 이승만은 “확정한 국제적 선례에 의거하고 국가의 복지와 방어를 영원히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요구에 의하여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긋고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를 ‘이승만 라인’이라 호칭하며 강력히 철폐를 요구 했으나 이승만은 오히려 한일 간의 ‘평화선’이라고 주장하며 이 선을 넘어오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다. 평화선은 1965년 6월 한일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사실상 철폐됐다.

노욕의 정치는 끝내 비극을 자초 했다

이에 반해 이승만의 대통령직 수행과정에서의 몇 가지 대표적 과오는 역사가들로부터 준엄 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첫째는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학습한 이승만의 여당과 정부가 정권욕에 사로잡혀 1960년 3월15일 부정선거를 감행, 이승만은 대통령에 4선됐으나 4.19혁명이 일어나 하와이로 망명하여 노욕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둘째로 지적되는 이승만과 그 정부의 과오는, 단행 시기의 부적절성과 국민 안전을 외면한 한강철교 폭파이다. 6.25 전쟁 초기 기습 남침한 북한군으로부터 서울을 사수한다고 방송하면서 이승만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은 이미 남쪽으로 철수 했다. 그래놓고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30분 무렵 미처 피난 못간 4천여 명의 시민들과 차량이 뒤엉켜 다리를 건너고 있는 중에 예고 없이 유일한 도강 다리였던 한강철교를 폭파, 500~800명의 시민과 수많은 차량 등이 수장된 사건이다. 당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승만 정부의 무책임성과 기만성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두고두고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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