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를 끌어온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재정위기의 파고가 유럽 정부를 차례로 전복시키는 쓰나미가 되고 있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이끌던 그리스 정부는 결국 자력으로 재정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야당에 손을 내밀며 연정 구성으로 귀결됐다.

파판드레우 총리 개인도 정치적 판단 착오에 기반을 둔 무모한 도박으로 끝내 불명예 퇴진하는 비운의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 퇴임이 결정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그러나 그가 무모한 선택을 피했다고 하더라고 시기의 문제일 뿐 정권 교체는 불가피한 수순이라는 것이 그리스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제금융을 얻어내기 위해 국민에게 뼈를 깎는 고통분담을 요구해야 하는 그리스 정부로서는 이미 운신의 폭이 한계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위기 국가인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정부도 그리스의 운명을 뒤따를 조짐이 역력하다.

집권 자유국민당(PdL) 소속 의원 3명이 최근 잇따라 탈당한데다 연정 핵심 파트너인 북부연맹과의 균열이 커지고 있어 다수 의석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8일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에 관한 의회 표결에서 집권 연정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되면 베를루스코니는 끝내 총리직을 사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해 긴축 예산안을 마련했으나 야당과 연정 참여 소수 정당 등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이미 유럽연합을 포함한 국제무대에서 지도자로서 신뢰를 상실한 데다가 국내 지지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어 그의 정치적 생명도 이미 시한부다.

▲ 총리직을 사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또 다른 유로존 부채국인 스페인 정치권에도 태풍의 눈에 있다. 당장 오는 20일 치러지는 총선에서도 여당의 완패가 예상된다.

스페인 총선은 중도 우파 야당인 국민당이 총 350석 가운데 안정적인 과반수인 190석 안팎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존 재정위기 문제로 말미암아 정권이 교체되거나 정치적 격변을 맞은 나라는 이미 한두 곳이 아니다.

지난해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아일랜드 역시 지난 2월 총선에서 집권 공화당이 14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앞서 지난해 6월 슬로바키아 총선에서도 중도좌파인 스메르 주도의 연립정부가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한 불만 여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초했다.

유로존 구제의 키를 함께 잡은 프랑스와 독일 정부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재집권은 어렵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마음은 더욱 바쁘다.

제1야당인 사회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표가 유로존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하면서 이미 여유 있게 지지율 1위를 내달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총선이 2013년으로 예정돼 있어 사르코지 대통령보다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앞날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다.

올들어 7번의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배한 것이 그녀와 연정에 대한 민심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시사지 슈테른의 보도에 따르면 유권자의 절반이 오는 2013년 차기 총선에서 메르켈 현 정부의 퇴진을 희망하고 있다.

2년여 동안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끌어온 데 대해 각국 유권자들은 충분히 지쳐 있다.

특히 기성 정치인들의 무기력이 유로존 위기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재정위기가 금융시장 혼란과 경제 침체를 넘어서 유럽 정부들을 무너뜨리며 정치적 지각변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유로존 난국 타개가 정치적 요동에 휘말리면서 시계 제로(0)인 예측불허의 안개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유럽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