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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폭(酒 暴)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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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4  22: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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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즐기는 백주(白酒·바이주)는 작은 잔으로 마셔야 한다. 50도가 넘는 독주라서 큰 잔으로 마시면 취기를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을 입에 넣으면 목구멍이 타는 것 같고 잠시 정신이 흐릿해진다. 이들은 스스로 작은 잔이 가득 넘치게 술을 부어 상대를 바라보고 덕담을 하며 잔을 비우는 것이다.

여기에 반해 한국인들은 잔이 크다. 소주잔이 제일 작고 막걸리 잔이나 폭탄주잔은 몇 배의 크기다. 한국인의 주 풍속은 작은 잔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막사발에 텁텁한 막걸리를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키고는 ‘크윽’ 트림을 하며 입가에 묻은 막걸리를 손으로 쓰윽 훔치는 풍모를 즐겼다. 도수가 낮고 술잔이 크니 많은 술을 먹게 되고 취기도 오래간다. 그래서 고래로 주사를 부리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애주가였던 성종 대 재상 손순효는 매일 말술을 마셨다. 어느 날은 만취 된 상태에서 어전회의에 불려가기도 했다. 혀가 꼬부라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임금이 단상에서 내려와 귀를 가까이 대고 대화를 나눴다. 화가 난 임금이 하루 술 석잔 이상을 마시지 말라 엄명했는데 술잔을 몇 배 크기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어명이 무색해진 손재상의 술 욕심이다.

애주가였던 조선말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그가 중국을 다녀와 쓴 글 가운데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당시 조선인들의 음주풍속을 이렇게 표현 했다. “이것은 붓는 것이지 마시는 것이 아니다. 배를 불리는 것이지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 마셨다 하면 반드시 곤드레했고, 곤드레하면 주정을 부렸고, 주정을 부렸다 하면 술집의 옹기와 질그릇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서 연암은 연경(燕京)에 이런 조선식 술집이 많았으면 거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을 거리고 조크했다. 요즈음도 중국 거리엔 주정뱅이들을 찾을 수 없다. 주폭의 농도가 술잔의 크기에 비례한 것인가.

영·정조 연간 화가 김후신이 그린 ‘술 취한 양반’ 그림을 보면 갓과 상의를 풀어헤친 체통을 버린 세 명의 양반이 한데 어울려 거리를 달려가는 모습이 매우 해학적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상 시나 흉년, 혹은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는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양반들은 자신의 집에 술독을 묻고 큰 잔으로 술을 즐겼으니 이런 그림이 나올 법도 하다.

폭음은 불행의 근원

술은 기분 좋게 마시면 약이 되나 폭음하면 불행의 근원이 된다. 그래서 오빈(吳彬)이란 명나라 때 애주가는 술 마시는 원칙과 때를 논했다. 그는 주정(酒政)이란 글에서 음주의 유칙(六則)과 육시(六時)를 정의 한다. 6칙이란 술 마시는 요건을 지칭한 것으로 사람(飮人)․ 장소(飮地)․ 때(飮候)․ 운치(飮趣)․ 엄금(酒禁)․ 잠시 쉼(飮闌)을 말한다. 6시란 봄날 교외(春郊)․ 꽃이 피었을 때(花時)․ 맑은 가을(淸秋)․ 초여름 녹음이 돋을 때(新綠)․ 비가 갤 때(雨霽)․ 눈이 쌓였을 때(積雪)․ 새롭게 둥근 달이 떴을 때(新月)․ 서늘한 저녁(晩涼)이다. 얼마나 풍류 있는 정의 인가.

옛 말에 취중 불언(醉中不言)은 진군자(眞君子)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에도 술 취한 자 가운데 말없는 자를 진군자라 정의했으니 만취해도 자신을 지키는 인물 찾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세상이 살기 어려워서인지 날로 주폭자가 늘어 경찰도 골치가 아프다. 술잔을 작게 하여 주폭도 없애고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폭음하는 버릇을 버리는 풍류의 육칙, 육시도 요즈음 세태에 한번 새겨봐야 할 고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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