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아닌 말(言)은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다. 좀 유식하게 말하면 사람의 생각,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 기호가 곧 말(言)이다. 이런 말은 긍정·부정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면은, 말 잘 하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써서 뺨 맞는 일 없다. 그리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고 했다. 말 잘해서 손해 보는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말의 부정적인 측면은,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잘못 말해 숱한 인간 갈등 사례를 배태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고,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지만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고,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고 했다.

말을 잘못하여 입게 되는 피해는 단순한 불이익을 넘어 말한 자의 신세를 망치거나 그 가족 또는 소속 조직까지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짧은 세 치 혀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왕조시대에 반역참소는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참상을 빚기도 했다.

그래서 자고로, 사람의 입은 화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구시화문(口是禍門)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이 말의 유래는 송나라 태종이 이방(李防)에게 칙명을 내려 ‘태평총류’를 편찬한데서 비롯된다. 훗날 태종이 하루에 세 권씩 읽어 1년 만에 완독했다 하여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제목이 바뀐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나온다.

“정신은 감정에 의해 발현되며, 마음은 입을 통해서 발표된다. 복이 생기는 것은 그 징조가 있으며, 화가 생기는 데도 그 단서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함부로 감정을 표출하거나 지나치게 수다를 떨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은 큰일의 시작이 되고, 큰 강도 작은 개미구멍으로 터지며, 큰 산도 작은 함몰로 기울어진다. 이처럼 작은 일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군자란 항상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로인해 일어나는 분쟁을 막기 위한 ‘말 무덤(言塚)’이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 존재한다. 이 말 무덤은 400~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각성바지들이 살고 있던 이 마을에서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 간 다툼이 그치지 않자 한 과객의 조언으로 말썽 많은 말을 사발에 담아 장사 지내고 ‘언총(言塚)’이란 비석을 세움으로써 마을에 싸움이 없어졌다고 하는 고사에서 비롯된다. 예천군은 이 말 무덤을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

이같은 말 무덤이 효과가 있다면, 그것이 가장 필요한 곳은 한국 정치의 본산지인 국회의사당 권역과 전국 정치무대이다.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설화(舌禍)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연평도 보온병 발언’과 ‘자연산 발언’, 강용석 전 의원의 여성비하발언, 민주당 정동영 전 의원의 노인투표관련 발언, 김용민 민주통합당 노원갑 후보의 노인폄하발언, 임수경 민주통합당 비례대표의원의 탈북자에 대한 막말발언, 충북도의회 일부 의원의 욕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 혀는 몸을 자르는 칼

기대했던 제19대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중에는 사상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언어 등 의원으로서의 기본자질 면에서 함량 미달자가 없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여의도뿐만 아니라 전국 정가 곳곳에 말 무덤이나 말 세탁소를 만들어 정치인들의 입을 순화시켜야 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했다. 입으로 나온다고 해서 다 말이 아니고, 아껴서 좋은 것은 비단 돈 만이 아니라 무심코 내뱉는 나쁜 말일 것이다. 나쁜 말은 입술에서 30초도 머물지 못하지만 상대방의 가슴에는 30년 동안 머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한편으로 명심할 것은 어둔 세상을 밝히는 ‘정의의 소리’를 보석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언이 불용, 외면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