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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나성(羅城) 깨진 비석 의미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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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12  16: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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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수백 개소가 넘는 고대 성곽(城郭)이 남아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성이 축조 된 것일까. 삼국 기에는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또 많은 외침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이 역사상 주변 열강들의 잇단 침공을 받고도 국가를 보유하고 전통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은 타 민족보다 많은 성곽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해석한다.

평지전에 능숙했던 북방 이민족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정복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평시에 읍성에 살다 외군이 침공하면 높은 산성으로 피신하여 죽기로 저항하는 조상들을 이길 수 없었다. 기마전단이 대부분이었던 외적은 높은 산성에 웅거하며 대응하는 우리 군사들을 바라만 보다 평지에서 약탈만을 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혹 무모하게 산성을 공격하는 경우에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충북에 남아있는 산성 가운데는 이런 국난극복의 승전 역사를 담고 있는 곳도 있다.

성곽은 축성 재료나 기능별로 명칭이 부여 된다. 평지에 쌓았으면 평지성이고 산성에 축조했으면 산성이다. 돌로 쌓았으면 석성이고 흙으로 쌓았다면 토성이다. 청주 제일의 고적 상당산성은 평지성이면서 산성이다. 낭성 쪽에서 보면 평지성에 가깝고 청주 쪽에서 보면 고준한 산성이다. 청주 정북리에 있는 네모반듯한 토성은 평지성의 대표적 사례다.

왕성은 그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며 왕이 주처하는 곳이다. 그래서 왕성은 장엄 웅대하고 주성(主城)과 연결 된 나성(羅城)이 있었다. 나성은 길게 벌려 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읍민 보호용이었다. 고구려 왕도 평양성이나 백제 고도 부여에서 나성의 유지가 발견되었다. 서원경(西原京)의 고지인 청주에도 우암산성과 연결 된 나성의 유지가 있다. 여지승람에는 당이산(唐羡山)이라 기록 된 곳을 나성의 유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흙을 다져 쌓은 판축형태의 토성유구가 일부 남아있다.

부여에서 나성의 유지를 발굴하고 있는 조사단이 백제 웅진기 문화층에서 명문이 새겨진 조각난 비석편을 찾았다고 한다. 이 비석은 나성을 축조하면서 기록한 중국 남조척(南朝尺)의 표석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왜 비석은 조각났으며 몇 자 외에 판독이 안 되는 것일까. 이 비석도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박살 난 것은 아니었을까.

부여 나성 백제 최후의 날과 운명 같이 해

부여나성은 부소산성(扶蘇山城)의 동문 부근을 기점으로 약 5백m 지점에 있는 청산성(靑山城)을 거쳐 남쪽으로 축조되었다. 석목리 필서봉(筆書峰) 상봉을 지나 염창리 뒷산의 봉우리와 금강 변까지 이어진다. 당시에도 지금의 부여 시가지 전체를 커버한 셈이다. 중후한 백제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 장대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여나성은 안보상 취약한 점도 많았다. 주성인 부소산성은 대군을 방어하기에는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부소산성 인근에 난공불락의 산성이 있었다면 고대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부여 나성은 백제 최후의 날과 운명을 같이 했다. 황산에서 들이닥친 신라 5만군사와 기벌포로 상륙한 당군 13만이 성을 공격한 것이다. 백제는 귀족, 군사, 성민 1만여명이 대항했다. 그러나 나.당 연합군의 기세를 당 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 나성은 무너지고 궁성은 불이 탔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당시 소정방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의자왕을 비롯한 부여인 1만여명을 포로로 하여 귀국했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백제의 수모가 이렇게 참담했던 것이다. 부여나성의 역사와 깨진 비석의 상흔은 나라의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묵시적으로 가르쳐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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