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진 취재부장

“최근 국토발전의 축이 수도권에서 중부권으로 이동함에 따라 청원과 청주는 신 수도권시대, 중부권 시대의 중심기능을 담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갖고 있다. 청원·청주가 하루 빨리 인구 100만 명 수준의 경쟁력 있는 대도시로 성장, 중부권 시대의 맹주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는 27일 실시될 ‘청원·청주 통합 주민투표’를 앞두고 지난 5일 이시종 도지사가 발표한 도민 담화문 내용의 일부다. 중부권 시대, 중심기능, 시대적 사명, 100만 명 수준, 경쟁력, 맹주, 역할 등. 어쩐지 어릴 때 눈 감고도 외우던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단어들 같다. 물론 그른 소리라곤 없다. 한마디로,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전체주의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것을 강권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 투표를 하지 않거나 통합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적인 사명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는 이어 말한다. “청원군민이 참여하는 27일 주민투표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주민들이 직접 행정구역 통합을 결정하는, 지방자치 발전에 획을 긋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헌정사’적인 의미, ‘지방자치 발전’사적인 의미를 강조하며 역사성을 부여하는 대목에서는 명분을 강조하는 유교주의적 도그마도 읽힌다. 어디에도 개인이 개입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 한범덕 청주시장은 청주시민이 아닌 청원군민들에게 거듭 약속했다. “청주시민협의회와 청원군민협의회가 약속한 상생발전 합의사항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이종윤 청원군수도 ‘주민투표 발의 발표문’에서 군민의 권리이자 의무를 내세웠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통합 여부에 대한 현명한 선택뿐, 찬성·반대를 떠나 투표권 행사는 군민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역시 명분만 강조할 뿐 청원군민들 손바닥에 잡히는 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기사화되어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휴대폰에 그대로 올라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손바닥에 들어와야 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스마트폰 형 첨단 개인주의 시대에 개인의 희생과 사명감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인 계도가 얼마나 먹힐지 궁금하다.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황규재(60)씨는 “통합 관련 홍보물을 단 한 차례 받아 본 것 같다. 뜬구름 잡기 식의 통합 구호만 난무하지, 통합 이후 농촌지역이나 농민들을 위한 구체적인 혜택을 알지 못한다. 벼락치기가 아닌 차분하고 지속적인 홍보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통합 혜택을 기대하지만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주민투표 당시 반대가 가장 심했다는 미원면 주민들을 만나 봐도 그렇다. 청원군 미원면 내산3구 박종환(71)씨는 “현재 500평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고추 건조용 면세유 5드럼 정도가 필요하지만 2드럼밖에 지원되지 않는다. 나중 후손들을 위해 통합되는게 낫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장 면단위 농촌지역에 뭐가 좋아진다는 건지 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명분이 실리를 넘지 못한다. 남은 기간 통합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명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