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유명 소설가 헤르만 헤세(1877.7.2~1962.8.9)의 작품 『동방으로의 여행』에서 레오(Leo)라는 사람이 중심적 인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을 보면 모든 허드렛일을 혼자 도맡아 하는 레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그런데 여행 중 어느 날 레오가 사라지자 그간 잘되어 가던 일행의 여행이 혼돈에 빠지고 흩어져서 급기야 여행이 중단된다. 충직한 심부름꾼 레오 없이는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여행객들 중 한 명이 몇 년을 헤맨 끝에 레오를 만나 여행을 후원한 교단으로 함께 갔는데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레오는 그 교단의 책임자이고, 훌륭한 리더로서 정신적 지도였던 것. 이에 주목한 컨설턴트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가 1977년 처음으로 ‘서번트(하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란 사회과학용어를 사용했다. 전통적 명령복종의 보스형 리더십에 대비되는 ’섬김의 리더십‘ 개념을 도출해낸 것이다.

이 서번트 리더십 이론은 1996년 이후 경영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 21세기 지식사회에 접어들면서 경영학계는 물론 정치, 사회면 등에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린리프가 역설한 서번트 리더십의 요체는, 타인을 위한 봉사에 초점을 두며, 종업원·고객 및 커뮤니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이다. 그 핵심은 경청·공감·치유·인식·설득·비전·예지·책무·성장지원·공동체 구축 등이다.

이곳에서 서번트 리더십을 장황하게 떠올리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계와 사회조직에서 ‘봉사자로서의 소통하는 섬김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리더십의 개념은 “조직내에서 어떤 특정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조직의 목적달성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능력이나 기술”이다. 이런 리더십이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이나 이른바 대권주자들 가운데서 제대로 발휘된 예가 드물다는 게 정평이다.

가부장적 명령복종의 지휘체계는 성행했으나 국민과의 소통과 섬김에 의한 리더십은 거의 부재했다. 김호진 교수는 그의 저서『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 단점으로 이승만은 제왕적으로 군림했고, 장면은 우유부단, 박정희는 2인자 배제 권력독점, 전두환은 군사적 전투주의, 노태우는 현실안주, 김영삼은 감각적 판단, 김대중은 완벽주의, 노무현은 코드인사·인격불안 등을 예시했다.

그러면 현직 대통령과 여론 선두 대권주자의 리더십은 어떤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소통의 불통’이 지적되고 있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로 상징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CEO리더십에 대해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009년부터 “포용과 믿음·소통·침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충고해 왔다.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국가를 운영하려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리더십만으로는 안되며 국가의 효율성이 없더라도 국방과 복지를 챙기고 약자를 보호하는 퍼블릭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옳은 말이다.

박근혜위원장 권위주의 리더십이 문제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재까지 여론상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도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 대표 등 야권은 “나홀로 불통 리더십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공격하고 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4·11총선 이후 박 전 위원장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미 몸을 높여버린 ‘권력’이 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박 전위원장이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 개발을 위해 단결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았던 권위주의 리더십을 떠 올린다”고 비판했다. 여타 대권 예비주자들의 국정운영 리더십은 아직 안개속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정치권에 요구되고 있는 섬김의 리더십을 현역 정치인 중에서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