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행사 참석차 절을 나서기 전 대성사 대웅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혜철 스님.

붓다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탄생했다는 날인 음력 4월 8일을 이틀 앞둔 26일 찾아간 충북 옥천군 대성사는 예상과 달리 비교적 한가해보였다.

다소 늦은 오후여서인지는 몰라도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리는 현수막과 줄지어 매달려있는 연등 등을 제외하면 초파일을 맞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고 간혹 공양 준비 등을 하는 보살들이 보일 뿐 전형적인 소규모 사찰의 모습이었다.

마침 손님을 배웅하러 나서는, 이 절의 주지 혜철 스님을 만나 그간의 정황 등을 들어보기 위해 스님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시피 스님은 소문난 ‘중매쟁이’다. 출가한 수행자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중매쟁이라니, 자칫 비꼬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벌써 수년 째 이 일을 해오면서 덩달아 대성사도 남녀가 연을 맺는 사찰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 날도 스님 집무실 책상 위에는 ‘마음나눔 싱글템플’에 가입하겠다는 남성의 신청서가 올려져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 대성사에 오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캐릭터 연등을 줄 거야. 그날 만남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선남선녀들에겐 6만원 상당의 은 귀고리를 보시할거고. 전국 미혼 남녀들을 초청해 인연 맺기 특별기도도 봉행할 예정이야.”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인연 맺기가 ‘순풍에 돛단 듯’ 흘러가고 있을까. 그에 대해 물어봤다.

“인연 맺기 신청을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석·박사 출신들이야. 그런데 남자는 고졸에서 전문대졸이 대부분이고. 그러다보니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그래도 지금까지 나와 우리 절을 통해 873쌍이 부부의 연을 맺었어. 연령대도 30대부터 많게는 70∼80대까지 있어.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가 노년의 성에 대해 보수적이잖아. 좋은 감정으로 만나다가도 자식 등 집안 반대 때문에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경우도 있어.”

때마침 50대 초반의 여성이 혜철 스님을 찾아왔다. 대성사의 마음나눔 싱글템플을 통해 알게 된 남성과 재혼을 하려 하는데 날짜를 택일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전 스님을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작년 10월께 TV에서 스님을 본 언니가 권해서 찾아왔죠.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됐네요.”

▲ 혜철 스님이 선남선녀 인연맺기를 통해 재혼을 하게 됐다며 결혼 날짜를 받으러 온 여성 회원과 대성사 집무실에서 이야기 중 웃고 있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스님과 같이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양해를 구하자 이 회원은 절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스님과 기자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마지못해 촬영을 허락했다. 축하한다는 덕담에 이어 날짜를 잡아주고 두 사람의 궁합까지 봐준 혜철 스님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874쌍 결혼 성사…낳은 아이와 다시 찾아올 때 제일 행복

“아까 873쌍이라고 했는데 이제 874쌍이 됐네. 어제(25일)도 한 커플이 결혼한다고 발표했어. 저렇게 날짜 받으러 올 때, 그들이 결혼하고 낳은 아이와 다시 여길 찾아올 때가 제일 행복해. 그 맛에 이 일을 하는 거야. 싱글템플 회원이 아니어도 결혼 날짜를 잡아달라는 사람들이 서울 등 외지에서도 오더라고.”

스님에게 인연 만들기는 부처님 오신 날과 어떤 ‘연’을 맺은 관계일까.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가 탄생한, 새로운 창조의 날이야. 인연을 만나는 것도 하나의 창조이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잖아. 이번 초파일에 인연 맺기 특별기도를 봉행하는데 그런 날에 만나면 각오나 다짐 역시 남다를 것 아니겠어? 대성사 하면 중매사찰로 통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중매를 서는 거야.”

스님은 인연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고 좋은 인연을 맺는 것은 행복한 삶으로의 지름길이며 이것이야 말로 사회를 밝히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남선녀 짝 지어주기에 열성적이다.

물론 중매쟁이는 다양한 수행 과정 중 하나일 뿐 스님의 본분은 수행자이다. 실제로 스님은 2010년 인터넷 언론 ‘불교공뉴스’ 창간을 비롯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충북도 상임대표, 충북도교육청 홍보대사, 옥천경찰서 경승실장, 사회적기업 ‘누리뜰 IT’ 이사, 원봉문화복지회 이사 등 종교를 넘어 사회활동에도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대전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해야 한다는 스님의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길에서 스님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조계종 사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종교가 너무 비대해지고 그러다보니 파벌이 형성돼 나타나는 일이야.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저런 일이 벌어지지. 종교의 참 뜻을 새기고 있다면 저러지 않을 텐데, 아쉬워.”

그러던 중 스님은 옥천군청 옆 삼양성당 앞을 지나가면서 성당 쪽을 잠시 살피더니 이내 미소를 띠었다.

“주임신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부처님 오신 날 축하 현수막을 안 걸었을 줄 알았는데 걸어뒀네. 그런데 이런 게 종교에 따라 결정되는 건 아니더라.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더라고. 어딜 가나 사람 하기 나름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