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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길오병익 경산초등학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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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20  16: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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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힌 폐교에서 종소리를 듣는다 /선생님 말씀 그리운 체취, /군데군데 잡풀로 쓰다만 편지되어 돋았다 /딱지치기 하다가 종자까지 마르면 /분이 풀리지 않아 굴렁쇠 앞세워 운동장을 달렸다 /울 선생님 생각난다 /칠판 가득 이름 앞에 꿈을 다닥다닥 그리게 하셨던… /흑백사진 속 까까머리들 /회초리 수만큼 더 자란걸까 /오를수록 작아지는 제 키 보며 /잠꼬대까지 손 넣어 확인하신, '바담풍'의 잔영에 화음을 붙인다. /필자의 시 ’가르침의 화음‘ 전문이다.

올해 스승의 날, 정말 큰 선물을 안았다. 40년 만에 제자와의 만남 그것도 우리 반 아닌 이웃학급 학생이었는데 내가 가르치고 있는 교실 창 너머로 늘상 기웃거렸던 여학생이 쉰 훌쩍 넘은 목소리 큰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멀리 인천에서 성년이 된 두 딸과 함께 찾아왔으나 금방 알아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찔레순 같던 기억이 마치 이산가족 상봉처럼 처음 말문조차 터뜨리기 울먹거려졌다. ‘최선을 다해 다독여주는 그런 선생님을 먼저 알고 존경한다.’며 나보다 어른스런 얘기들로 이젠 내 귀를 많이도 뚫어주었다.

멀리보고 묵묵히 걷기

사범학교 졸업 후 첫 발령으로 오신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고등학생처럼 짧은 머리에 4km가 넘는 길을 꼬박 걸어서 출퇴근하시며 아무리 추워도 호주머니에 손 한번 넣지 않으신 채 꼿꼿한 모습을 지키셨다. 언제나 부모님보다 더 나즈막한 말씀으로 ‘공부란 쉽고도 재미있는 것’으로 반 아이들은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에 푹 빠졌다. 선생님 퇴근길엔 모두 따라나서 절반정도 거리를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다.

비록 짧은 1년이었지만 인생의 진로가 터득되는 큰 희망을 안겨주셨다. ‘꼭 담임선생님 닮은 교사’가 되려는 꿈을 지피기 시작한 계기였으니 그 보다 더한 감동적 인연을 어디서 찾겠는가? 그 후, 선생님의 대를 이어 교단에 올라 선생님 역할을 흉내내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앞설 뿐, 참된 티칭(teaching)은 예상외의 많은 오류 투성이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가르침의 길’이란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교직 20년이 막 지났을 무렵, 어쩜 필연처럼 은사님께서 교감으로 계신 학교로 자리를 옮겨 설렘 가득한 두 번째 인연을 시작했다. 문화 혜택이라곤 전혀 없는 학교 교실 두 칸 너비로 만드신 갤러리에서 전교생에게 물감 붓을 쥐어주고 예술 싹을 틔워내던 은사님은 ‘변화에 대응하는 선구자적 교육’의 자양분을 공급하고 계셨습니다. 낮엔 아이들과 묻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퇴근 후면 곧장 서너평 쯤 씩 나눠진 사택으로 돌아와 가늠해 주신 쌀뜨물을 부어 지은 밥과 텃밭에 가꾼 채소까지 반찬이 되어 입맛도 붙어 갔다.

비가 내리는 늦저녁이면 부엉이 소리에 감정을 뺏겨 잠까지 설칠 때, 은사님께서 별도과외로 지도해 주신 ‘바른 삶의 행보’는 유일한 자산으로 챙겼다. 한 해가 좀 넘어 은사님은 교장선생님으로 제자인 저는 장학사가 되어 이별의 짐을 챙겨야 했다. 몇 해가 지나 정년으로 떠나시는 자리에서 문하생 대표 사은사를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철부지의 행보가 어렴풋함을 깨달았다. 이젠 교장이 된 제자에게 “교직은 인생의 참된 자기를 먼저 가꾸는 천직(天職)”이라며 긴 여운의 메시지를 주신다.

교육현장을 향한 볼멘소리가 무거울 때마다 스승님의 너른 품이 그리운 걸 어쩌겠는가? 교직을 택하려는 사람은 넘치는데 정작 필요할 때 선생님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란 쓴소리를 비껴가기 어려운 현실 앞에 대잇기의 청출어람을 다시 한 번 손질해 본다. 은사님! 말씀처럼 “앉아서 기다리는 햇볕이 아니라 일어서 끌어오는 제자가 되도록” 다짐한다. 교육은 ‘멀리 보고 묵묵히 끌어야 할 역경의 빛'이라지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는 뉴스가 거짓이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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