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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질’류경희 편집국장
류경희 편집국장  |  queenkyungh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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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1.28  15: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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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얹혀사는 백수 연하 남편이 있다. 아내의 생일날 밥 한 끼는 사줘야 남편 체면이 서겠기에 그는 푼돈벌이를 위해 공사장 잡부로 취업한다. 평소 빗자루 한번 제대로 쥐어 본 적 없었던 청년에게 건축자재를 나르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일터에서의 첫날, 반나절을 넘어지고 까지며 실수만 연발하던 그는 새참시간이 되어 공사장 고참 인부들과 공사장 바닥의 스티로폼 자리에 앉아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버지 연배의 인부가 그에게 막걸리 잔을 건네며 질문을 했다.

“자네 거칠고 힘든 일은 모두 질이라 부른 걸 아나? 지게질, 도끼질, 물질 같은 거 말일세.” “손가락질 받는 일에도 질자가 붙잖아요. 도둑질, 노름질, 같은 거요” 청년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지, 그런데 그 많은 질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질이 뭐겠나?”

어느 날, 모임에서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며 좌중을 둘러보자 늘 재치가 반짝이는 A선생이 손을 번쩍 드셨다. “그야, 남녀사이의 질이겠지” 계집질, 서방질 소리는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으나 적당히 눙친 그의 말에 동조하는 웃음들이 터졌다. “아니, 그렇게 그 일이 힘들다면 높으신 양반들이 왜 직접 그 일을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네요. 부하 직원을 시키시지” 짐짓 눈을 흘기며 지적을 하자 더 큰 웃음이 터졌다.

다시 본래의 상황이다. 청년이 한참동안 대답을 못하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선배가 자신이 낸 문제의 답을 일러줬다. “바로 숟가락, 젓가락질이라네. 사람 입에 밥을 넣는 수저질이 가장 어려운 일이야. 그래, 밥벌이하기가 쉽지 않지?”

한참 전에 TV에서 보았던 길지 않던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니,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 어려운 수저질을 위해 우리는 밥벌이를 하러 나선다. 아무리 배불리 밥을 먹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무효가 되는 밥,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되풀이해야하는 밥벌이는 시지프스의 고행과 신통히도 닮았다.

자신을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려한 헤르메스를 잡아서 감금시켜버린 시지프스에게 분노한 제우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내린다. 그런데 바위는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영원히 되풀이되는 가장 지겨운 형벌인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가기 위해 김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김훈의 글 ‘밥벌이의 지겨움’이다. 자, 오늘도 도리 없이 힘을 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저질을 거부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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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풍
국장님의 글에 인생의 고달픔이 배어 있네요. 그런데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고달픈 --질도 좀더 고상하게 생각하면 고통이 기쁨과 보람이 될 수 있다고요. 즉 누군가를 섬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고통이 반감될 겁니다. 글 속의 청년은 아내를 섬기고, 공사의 완공을 기다리는 이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사람입니다.
(2011-12-22 07: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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