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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의 재활오병익 청주 경산초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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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06  18: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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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를 ‘엄마’라 불렀습니다./ 신혼 여행 다녀와 절을 올리고도 ‘엄마’ 소리가 먼저 튀었습니다./ 색시는 웃었지요 ‘엄마가 뭐예요?’하면서/ 아이를 낳아 아빠 됐는데 ‘엄마, 엄마’하니 볼썽사나웠나 봅니다. ‘엄마, 엄마...’ 모처럼, 가리지 않은 채로 맨입 찢어져라 웃으시던 엄마/ 진짜, ‘어머니’라 모시고 싶은 세월이건만 지금은 안계십니다. 필자의시 ‘엄마 이름은 엄마’ 전문이다.
 
팔남매의 어머니인 우리 엄마는 일흔을 조금 넘긴 연세에 저 세상 고운 화장을 하셨다. 생전, 고해할 곳 없다며 전화 한 번 당기시면 유독 통화가 길었던 일도 어머니의 다른 준비란 걸 눈치 못 챈 바보였다. 하루는 등산 중 마구닫이로 걷다가 독사 두 마리를 마주하고‘어머니’를 연거푸 불렀으나 사실은 독사가 먼저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몰랐다.

나이들기 무서워

5월은 사람의 달이다. 어린이·어버이·스승의 날에 성년과 부부의 날까지 겹쳐 아예 가정의 달로 묶었다. 다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의 발빠른 적응인지 몰라도 요즘 아이들 커가는 걸 보면 장면 장면마다 놀랄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선 아이냄새가 났으면 좋으련만 가끔은 어른냄새로 진동하니 게욱질 아닌가. 도무지 아쉬울 거라곤 눈꼽 만큼도 없도록 과잉 받침해온 자녀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튈 세상 부모의 공통어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답안은 한 가지다. 가끔 포장 안된 길을 혼자도 걸어봐야 신발의 고마움을 알고, 모자람을 터득해야 작은 것에 감사한다.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할머니를 폭행하고 금반지와 현금을 들고 달아난 사건,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흉기로 죽인 존속 살해,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패륜을 저지른 충격을 보며 나이 들기가 겁난다. 삼강오륜은 쑥 빼고라도 할머니와 손녀뻘 된 숙녀 사이에 무례한 지하철 행태는 또 뭔가? 그러나 아이들 일기장 한 쪽엔 희망이 싹튼다. 엄마는 장판이 닳아빠진 할아버지 방을 닦으며 울으셨고, 아빠는 지난 해 여름 뙤약볕에 논 농약을 치다 쓰러져 이내 허리를 못 펴시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빨리 모셔와 3대가 함께 살며 부모님 사랑을 조금씩 갚아야 겠다는 엄마 아빠 말씀에 나도 그 날이 기다려진다.
 
계절에 가장 민감한 변화를 색깔로 단장하는 자연은 사철의 굴레가 일정하지만, 사람이 이룬 사회에선 사람으로서 기본이 우선과제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향기를 갖는다. 어른 아이 하나 구별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미화할까?  더 늦기 전, 옛 명성 교육의 도시로 복원시킬 수 있는 원천은 바로 효이며 변해야 할 것도 바로 효 아니던가?

살다보면 정말 엉뚱한 길에서 기운 빠진 경험 쯤 흔하다. 처음 길을 잘못들어 평생 어긋난 이도 있고 생각잖은 부자(父子) 또는 고부(姑婦)지간이 되어 잘나가던 지위와 이름까지 하루 아침에 추락한 날개도 본다. 물론 살다보면 머피의 법칙이 어찌나 철저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잡힐듯 멀어짐도 어디 한 두 번 속은 계산이랴. 개중엔 부모 자식의 관계가 좋아 하는 일 마다 술술 풀린 사람도 눈에 띄지만, 파고 들어가 보면 원수처럼 깨져버린 숫자도 꽤 많아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 가슴 한복판에서 영원히 사시는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卒)로 보는 일그러진 영웅, 왜 일까? 소통부재, 아님 지나친 욕심? 이유와 상황은 다르겠지만 부모를 한 데 묶는 단어라면 ‘자식을 떠 받치는 기둥’이었는데 쓰나미를 맞았다. 

효도 모르는 자녀는 독사 이빨과 같다

모 방송 프로그램인 ‘인간 극장’은 몇 년 째 내게 인생지도서가 됐다. 삶의 희로애락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사람 풍경화다. 가끔, 하찮은 일로 판단이 흔들리거나 마음 찢길 때 유사한 장면을 떠올려 곧잘 아픔을 면제 받는다. 숱한 실화 중 대부분은 ‘못나고 못 배운 자식일수록 효의 귀감’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정말 잘나고 잘 배운 사람이다. 피붙이끼리 찢기고 생채기난 재활은 오랜 시간을 두고도 눈물 겹도록 힘들다. ‘자식 믿지 마라, 자식 주지 마라, 자식과 같이 살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마라’며 후회하는 어른들의 유행어가 금언처럼 박혔다. 슬프다 못해 다시 용서해 버릴 표정관리가 두렵다.

세익스피어의 작품 ‘리어왕’에 ‘효도할 줄 모르는 자녀야 말로 집안에 독사 이빨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나온다. 훗날 부모의 팔꿈치를 물어 뜯을 독사 같은 존재로 타락한다고 했다. 힘 있을 때 지성으로 받들어 그 흔한 예감인 노환과 치매조차 건너뛴 애틋한 효라면 얼마나 지혜로운 재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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