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과거 조선 왕조시대에도 ‘민심’의 향배에 대한 왕실의 관심은 컸다. 임금은 매일 책상에 쌓이는 유림들의 상소로는 바닥 민심을 읽을 수 없었다. 지방 수령들이 임금에게 보고하는 정례 문서도 성이 차지 않았다.

고안해 낸 것이 임금의 측근을 몰래 지방으로 보내 염탐하는 암행어사 제도였다. 몰래 마패를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어사들은 나졸들을 비밀리 대동하고 지방에 내려가 민심을 듣고 관아를 급습, 창고를 봉인한 후 관용재산을 점검했다.

고전 춘향전에 나오는 암행어사 출두는 서민들에게 학정과 비정을 응징한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전략)...좌수(座首), 별감(別監) 넋을 잃고 이방, 호방 혼을 잃고 나졸들이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갈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강정 들고, 병부(兵符)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는 것은 거문고요 깨지는 것은 북과 장고라. 본관 사또가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새앙쥐 눈 뜨듯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은 상을 잃고 문짝을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이때 어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잡소리를 금하고 객사(客舍)로 옮겨라.” 자리에 앉은 후에, “본관 사또는 봉고파직하라.” 분부하니...(하략)

어사출두는 판소리로 들으면 더 신이 난다. 고수는 요란하게 북을 두드리고 소리꾼은 힙합(Hip hop music)처럼 빠른 곡으로 권선징악을 실감 있게 풀이한다.

암행어사들은 임금의 명을 받았기 때문에 부패한 관리들을 즉석에서 파면을 할 수 있었다. 지방 수령보다 벌을 받은 것은 관아에 붙어사는 아전들이었다. 기록을 보면 어사출두로 백성들을 괴롭히던 아전들이 색출되고 처벌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또 이런 일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효자 효부를 표창하고 흉년 시기 백성들이 굶주릴 때 이들을 지원한 선량한 부자들이 있으면 중앙에 벼슬을 건의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춘향전이 서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탐관에 대한 응징과 억압받은 민초들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성종은 미복으로 변장하여 자주 서울 장안을 잠행했다. 일부 야사에는 재담 기생 소춘풍을 만나러 궁을 빠져나갔다는 일화가 있지만 서정을 개혁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남산골에서 포의로 과거를 포기 한 선비와 대화를 하고는 그가 깊은 학문을 이루고 있다는 판단을 한 성종은 그 이튿날 직접 전시를 준비하여 선비를 발탁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백성들의 생각과 고정을 살피는 것 또한 최고지도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민심을 외면하면 정부나 집권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물론 야당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치 세력은 과연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서민들의 고통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최근 전국을 돌며 추석 민심이 냉담함을 토로했다. 그는 ‘민심은 정치권 전체에 대해 과연 정치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는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곳은 이제 용산 대통령실이다. 한 대표의 인식처럼 대통령도 국민들의 생각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국민들의 고통이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

그동안 경제 어려움, 의료대란, 계속되는 야당의 탄핵 공세로 국민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펼 날이 없었다. 암행어사가 출도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듯 국정의 일대 쇄신책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