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백 작가가 작품세계 3기를 상징하는 '똥, 존재의 다양성에 관한 성찰'에 대해 작품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을 잉태하기 위해 젊은 날 가슴앓이 하던 한 작가는 50대 중반으로 변했다. 질척한 삶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는 그만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화순 운주사의 돌부처 천개를 만들어 전시회를 개최해  중앙화단의 주목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설치조형작가 장백의 작품세계 3기를 조명해 본다.

이미 만들어 놓은 돌장승 천개 작품전을 열고 싶다는 그는 배는 고프지만 작품을 향한 열정과 예술관은 구도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편집자 주

▶ ‘Heart-ache’ 시리즈와 자화상 시리즈의 1기

장백은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통하여 자신의 미술 세계를 망설임 없이 확장시켜 왔다. 그의 미술세계는 크게 세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85~ 1992년으로 ‘Heart-ache’ 시리즈와 자화상 시리즈 작업이 주를 이루었고, 두 번째 시기는 1993~2004년으로 돌부처와 돌장승 시리즈 시기, 세 번째 시기는 2005년 이후로 설치조형 작업이 화두였다.

그는 실물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 한국미술계 주류를 이루던 1기의 작업은 시류에 반하여 거칠고 둔탁하고 물질감이 두드러진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 작가의 미학적 관심은 지병인 심장병을 앓으면서 체험한 육체적 고통을 모티브로 삼은 작업으로 평한다.

미술평론가 장석원씨는 “질척질척하게 묻어오는 생의 절규, 무엇이라고 형언키 어려운 아픔이 등 뒤로부터 밀려온다”고 했다.

이렇듯 당시 그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의 체험을 독창적인 방법론으로 풀어냈다. 이는 타고난 그의 반골(?) 기질의 반영으로도 보이는 한편 이념이나 정신세계 보다는 현실감각 세계를 중요시하는 그의 유물론적 세계관의 자연스런 반영으로도 보인다.

또한 자신이 체험한 고통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당시 그의 작업세계를 개인의 취향이나 철학, 미학적 태도로 단순히 볼 수만도 없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 사회는 군부가 정권을 농락하는 강권통치 상황이었기에 그의 격렬하고 파괴적인 표현과 고통스런 주제와 소재 그리고 오브제적 요소가 가미된 즉물적이며 직설적인 화법은 당시 억압받던 한국 민중의 애환이 실감나게 읽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 그의 작품은 미술,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하겠으며 실제 그의 작품은 표현의 과격성으로 일부 전시관에서는 전시 자체가 거절될 정도였다.

▲ 장 작가는 작품에 몰두하기 전 특히 비오는 날 밤이면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 이데아를 향해 나래를 펼치고 있다.

▶‘천불’ 통해 무한복제와 숭고미 엿 보인 2기

두 번째 시기의 작품세계는 극단적으로 첫 번째 시기와는 대조 된다. 첫 번째 시기가 지극히 즉물적 표현이 압도했다면 이 시기는 정신성이 극대화 된 시기이다.

마치 다른 작가의 작품과도 같이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질척질척 묻어나던 즉물 감각성은 소멸되고 작품에 차용되는 이미지 소재도 작가의 구체적인 신체기관에서 초월적 존재인 돌부처이미지로 대체된다.

물감도 오일에서 아크릴 물감으로 수성으로 바뀌고 캔바스는 광목인 천연섬유로 대체 된다. 둔탁하지만 선으로 표현되던 형태는 오목 판화처럼 선을 그리지 않고 표현하는 언터치 페인팅 기법이 개발되어 표현된다.

이때의 작업을 평론가 박영택씨는 이렇게 쓰고 있다. “광목 위에 아크릴을 사용한 그의 작업은 최소한의 경비와 최소한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자신의 상황에서 그림 그리기의 방편에 따른 것이고 적은 표현으로 함축적인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다는 바램인 것이다”

이렇게 극도로 절제된 표현으로 그려진 4호 크기의 돌부처 얼굴이 1000개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웬만한 전시장에는 설치 할 수도 없다. 낱개로는 존재감이 희미하던 돌부처 얼굴이 넓은 전시장 벽면에 설치되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어떤 알 수 없는 우주의 절대적 에너지가 마치 전시장 안에 가득한 것과 같다. 기자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현대미술의 한 축인 숭고미를 실감할 정도로 경외감 마저 든다.

작가는 이렇게 혁명적으로 바뀐 자신의 작업세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장 작가는 “사회변화와 마찬가지로 현대미술 경향은 과학과 물성에 깊이 의존 합니다. 과학적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 복제, 그것도 원본이 중요하지 않은 혹은 원본이 필요 없는 무한복제와 숭고미를 꼽을 수 있겠는데, 1000개의 돌부처 작업은 거의 유사한 돌부처 얼굴로 반복적으로 작업(복제)된 것이고 이것이 한 공간에 설치되었을 때 거대한 힘에 경도되는 숭고미가 발현되는 것입니다. 즉 현대미술의 맥을 읽고 제작된 작품입니다. 넉넉지 못한 경제적 현실에서 가능한 작업으로...”라고 했다.

▲ 장백 작가가 그의 작품세계 1기 때 만든 '허트에이크'를 연상하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듯 갈기갈기 찢긴 상처에 대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똥, 존재의 다양성에 관한 성찰 3기

마지막으로 최근의 그의 작업은 설치조형작업으로 진화했다. 사람의 똥 형태와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똥들은 작가의 이미지 아이콘이다. 바로 각 개별 존재들의 상징인 것이다. 신문지나 폴리코트 작업으로 물성이 강하게 표현되는가 하면 물성이 희미한 화장지로 작가가 성형한 틀에서 반복적으로 캐스팅 된 화장지 똥이 수십 개, 수백 개씩 공간에 설치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앞의 두 작업경향이 변증법적으로 합쳐진 듯이 보인다. 물성이 후퇴하는 듯 하면서도 물성이 강조 되고, 표현이 절제되는 듯하다가 입체적 볼륨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보다 내밀한 사회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전 작품이 개인적 환경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의미를 포섭했다면 ‘똥 작업’으로 불리는 최근 캐스팅작업은 개인적 환경보다는 사회적 문제를 의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와 대응하는 태도가 개인적 영역에서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라 하겠다. ‘패밀리’나 ‘가계도’같은 작품들을 보면 유사한 그러나 개별 존재들이 무한히 만들어져 공간을 점유하고 배열되어 있다. 마치 인류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려는 듯이 전시장 바닥에서 출발하여 벽면으로, 벽면에서 천정으로, 천정에서 공간으로 흩어져 나간다.

개개의 캐스팅된 존재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내밀하게 혹은 느슨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의 캐스팅 작업은 사회학적 의미 외에도 인간존재의 생물학적 존재에 대한 성찰도 숨어 있다.

시인 정재현 씨는 “똥을 소재로 설정한 그의 작업은 각 존재가 가족 간 구성원을 넘어 사회구성원과의 관계로, 이는 다시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나아간다.”고 표현했다.

특히 장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모든 문제를 두 가지 절대 명제하에서 푼다고 한다. 그 두 명제 하에서는 인간문제가 풀리지 않을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 하나는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사회학적 존재’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변증법적 진화를 거듭해 온 그의 미술세계가 실천적 사회참여미술로 나아가려 한다. 인간의 편의와 욕망대로 마구 왜곡되는 무자비한 개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려 한다.

마치 생태자연환경에 여러모로 유해함을 노출하는 인본주의는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동양 본래의 세계관인 자연주의, 생태자연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처럼 그의 미술활동은 인간만의 미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이데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