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필자는 대학별 고사로 신입생을 선발한 마지막 세대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 대부분은 우열반이 편성되어 명문고 기세가 등등했다. 서울대 합격자 수에 따른 순위, 안 되겠다 싶었던 박정희 정부는 대입 예비고사를 본고사와 병행하여 공교육 정상화 정책을 폈으나 사교육 활개에 주춤하고 말았다. 폐지‧강화‧부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현실에 이른 수능의 운명이 안쓰러워 고 2짜리 외손에게 이따금 전화 단축키를 누르지만 ‘지금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다. 분명, 학원에서 덩그마니 앉아있을 모습이다.

원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정상화와 대입 전형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미 6월 모의고사(모의평가)도 끝난 수능 5개월 전, 갑자기 '초고난도 문항(수업시간 스토리와 전혀 무관한)'을 출제하지 않겠다는 비상벨이 울렸다.

배경에는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꿈쩍 않자 결국, 대입 담당국장은 경질됐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스스로 물러나는 등 홍역을 치렀다. 부랴부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논란의 핵심인 킬러 문항(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관련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었다. 수능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학교 수업과 공교육 교과과정, ‘킬러 문항’ 정의엔 초점을 흐렸다.

돌이켜보면 1994년 수능 도입 후 역대 정부도 ‘괴짜 수능, 물 수능, 불 수능’과 함께 숱하게 겪은 ‘공교육 혁명’ 수난사였다. 일례로 사교육을 근절하겠다며 EBS에 매달려 수험생들 늦도록 붙들어 두고 TV 화면만 지킨 ‘야간자율학습’이 대박 났던 때도 있었다. 지문 70% 이상 방송교재를 베껴 변별력은커녕 ‘운(運) 7 실(實) 3’ 고백을 기억한다.

최근 입시업계는 국어(10%)·수학(2~3%)·영어(20%)의 3과목 평균 정답률 10%가량을 특별 고난도 문항으로 분석하였다. 왜 하필 ‘킬러(killer)’ 인가. 언뜻 들어도 섬뜩하다.

어쨌거나 사교육비 감소와 공교육 경쟁력에 미칠 더블 펀치력은 머쓱할 공산이 크다.

◇ 대학 자율에 맡겨야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세계 으뜸인데 쓸 만한 인재는 드물다니 아귀가 안 맞는다. 거의 규격화된 수능이 옥죈 인재다. 출산율 최하위권, ‘엉터리 수능’으로 언제까지 아이들을 골탕 먹일 작정인가. 인간의 창의성마저 하나 둘 앞설지 모를 AI시대, 사람마다 쓰임이 다른데 100인 100색 가치는 ‘입방정’쯤 치부하지 않았나. 자칫 ‘날림‧땜빵’ 수능 딜레마를 어쩌랴. 수능 증후군과 헤어질 담대한 결심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석학의 제비뽑기 처방까지 나왔겠는가. 차라리 수능을 자격시험 정도로 바꾸고 대학 자율에 맡겨라. 그 기구한 운명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