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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쪽판사' 이회창의 굴곡정치
김춘길 주필 겸 대기자  |  kck90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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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1.23  15: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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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길 주필 겸 대기자
1935년6월2일 황해도 서흥군에서 출생했다. 조선왕실의 방계로 목조의 넷째 동생 이영습의 23대 후손으로, 본관은 전주다. 그의 정치적 연고지가 충남 예산으로 된 것은 부친과 선대의 고향이자 본적이 예산이었기 때문이다. 선조 이영습은 고려 대장군 이양무의 넷째 아들이자, 이준. 이의방 형제의 종손(從孫)이었다. 이용습의 후손들은 왕실의 직계가 아니어서 조선건국 이후에도 왕족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용습의 가문이 충남 예산에 자리 잡게 된 사연은 이렇다. 주부공 이영습의 증손자인 이세분(李世芬)은 조선왕조 개국공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냈고, 이영습의 6대손인 우계당(牛溪堂) 소생(紹生)은 단종 때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냈는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예산군 대흥면 우정촌(현 교촌리)에 은거한데서 비롯됐다.

누구를 말하려 함인가. 자유선진당 전 대표 이회창 의원(지역구:충남 예산.홍성)을 다시보기 위해서이다. 이 의원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미FTA 비준이 목전에 박두한 이 절박한 시점에 이르러 선(先) 대책을 실현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통감하고 내년 총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계은퇴는 아니라고 했다. 이 의원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보수세력의 재집결을 통한 대권도전의 선행포석’ 등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있지만 진심은 그 만이 알 일이다. 이회창 의원은 지난 22일 한나라당에 의해 강행 통과된 국회 한미FTA 처리 때 자유선진당의 조순형(비례대표).김용구(비례대표).이영애(비례대표).이인재(논산시.계룡시.금산군)의원 등과 함께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져 당내 반발을 사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개진하려는 담론의 초점은 정치인 보다 법조인. 법학자로서의 이회창이다. 재조법관 시절 ‘대쪽판사’란 닉네임으로 후배법관들의 추앙을 받았던 이 의원은 1981년 최연소 대법원 판사가 되어 사법적극주의와 법관에 의한 법형평성 등을 강조하며 정권의 입맛에 배치되는 소수의견으로 유명했다. 권부와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피력, ‘대쪽판사’란 별칭을 얻었고, 서슬이 퍼런 군사정권의 사사로운 청탁을 거절함으로써 요시찰 인물이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법관으로서의 이회창’은 국민들의 칭송을 받은 ‘성공한 법률가’였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이회창’은 성공보다 ‘실패한 인생’이란 평을 면키 어렵다 하겠다. 이 의원이 법조계를 떠나 제15대 감사원장. 제26대 국무총리를 지낼 때까지도 권력에 대한 의연한 자세와 원칙적 일처리는 그의 명성을 유지시켜 주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정계에 투신, 신한국당 제15대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 제16대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한데 이어 무소속으로 제17대 대선에 도전 했으나 또다시 낙선, 대권의 꿈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세풍(稅風).총풍(銃風).차떼기. 자식 병역비리혐의(법원에서 무혐의 판결) 등으로 시련을 겪으면서 이 의원의 ‘대쪽 이미지’는 크게 퇴색했다.

지난해 6월의 재보궐선거에서 자유선진당의 패배에 자책, 2008년 2월1일 창당한 자유선진당의 대표직을 사임했던 그는 이제(정계 은퇴는 아니라 하지만) 내년 총선 불출마라는 돌을 정치반상에 놓았다. 그 한 수가 ‘정치활착’이 될 지, 아니면 ‘정치패착’이 될 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대권가도의 묘수’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 전망이다.

14년 전 이회창의 삶과 세상 이야기를 담은 저서 ‘아름다운 원칙' 책머리에서 그는 아내와의 이틀 강릉 여행 귀가길 소감 일부를 다음과 같이 썼다. “ (전략)떠나올 때 내 앞에 펼쳐져 있던 길은 돌아올 때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의 삶도 한 길이 끝나면 그 모퉁이를 돌아 새로운 길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이제 내 앞에는 어떤 길이 펼쳐질 것인가.(후략)” 과연 2011년 11월 이후 이 의원 앞에 어떤 길이 열릴 것인가. 법률가로서의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이 의원이 정치권에 몸담은 이후 점점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대쪽판사 이회창‘의 정계입문은 원초적으로 오진(誤進)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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