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천 편집국장

길거리를 가다 보면 여기저기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이 무척 많이 눈에 띈다.

내용은 거의 상대 정당이나 정권을 비방하거나 정쟁을 하는 것들이다.

“김건희를 수사하라”(더불어민주당), “불체포특권 폐지, 민주당만 빼고?”(국민의힘), “더는 안 속는다 민주당 반일 선동!”(자유민주당), “민주파괴 검찰독재 윤석열타도!”(민중당) 등 정치적 주장과 선동들이다.

전에는 이런 정치적 현수막이 선거철에나 잠깐 있었던 것 같은 데 언제인가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내걸려 있다.

게시 장소도 사거리든 도로변이든 공원 철책이든 가리지 않는다.

왜 이렇게 갑자기 정치적 구호 현수막이 많아졌나 했더니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법을 바꿨기 때문이란다.

길거리에 현수막을 함부로 붙이지 못하게 하는 법은 옥외광고물관리법이다.

종전에는 이 법에 따라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들이라도 거리에 현수막을 걸려면 관할 시·군·구청에 신고하고 허가를 얻어서 지정된 곳에만 가능했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이 법을 정당의 경우에는 현수막을 관청에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간 게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고, 개정된 법과 시행령이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이나 소상공인들은 지금도 먹고 살기 위해 자신들의 점포나 사업을 알리려고 해도 이 법에 의한 제한 규정과 비용 때문에 마음대로 현수막을 내걸 수 없다.

그런데 오직 정치인들만이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을 마음껏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법을 고친 이유가 정당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알리는 ‘통상정인 정당활동’을 더욱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니 ‘눈 가리고 아옹’이란 말이 절로 떠 오른다.

게다가 현수막 게시에 들어가는 비용도 정당에서 낸다는데, 정당에는 매년 국민의 혈세로 900억원이 넘게 국고보조금을 주고 있으니 결국 국민들의 돈으로 자신들의 주장이 담긴 현수막을 거는 셈이다.

그리고 정당 현수막이라지만 거기에 그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 이름을 크게 넣어서 홍보를 하고 있으니 다른 정치 지망생과의 형평성, 사전 선거운동 차원에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당 현수막은 이러한 형평성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이거나 과격한 표현들도 많아서 학생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국민 정서에도 좋지 않다.

또 여기저기 걸린 현수막들은 시야를 가리고 도심 경관을 해치며 시민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그래서 법을 개정할 때 행안부에서는 “정당의 현수막 게시를 자유화하면 난립 우려가 있으니 개수 제한이라도 두자”고 했지만 국회의원들이 듣지 않았다고 한다.

또 낮게 걸린 현수막은 보행자와 차량에 지장을 주거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실제로 지난 13에 인천에서는 한 20대 여성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다 이런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지자체에는 정당 현수막과 관련된 민원이 넘쳐난다고 한다.

또 인터넷이나 SNS에도 정당 현수막을 비난하며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서울과 인천의 구청장들이 법을 다시 고쳐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선거 때 입만 열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던 정치인들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