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천 편집국장

지금 충북 교육계는 이른바 ‘강사 블랙리스트’ 암운이 스멀스멀 드리워져 가슴에 묵직한 돌을 얹고 사는 형국이다.

이 사건은 새해 벽두인 지난 1월 초 도교육청 산하 기관인 단재교육연수원의 김상열 원장이 자신의 SNS에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렇게 썼다.

“도 교육청에서 연수강사에 대한 의견이 전달되었다. 작년도 우리 연수원 강사 1200여 명 중에서 몇 백 명 정도의 강사를 연수에서 배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블랙리스트’가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등장하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환경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직을 종용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산하 기관장들의 임기가 남아 있었는데도 빨리 나가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도 생각해 볼 대목은 있다.

국민들은 문재인과 민주당의 철학과 정책을 구현해달라는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를 선택했는데, 이들하고는 다른 철학과 정책을 갖고 있는 산하 기관장들이 새 정부의 정책 시행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금도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통위원장에게 ‘빨리 그만두라’며 대면 업무보고조차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강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김 원장도 지난해 6월 김병우 전 교육감이 3선 도전에 실패하자 자신의 임기가 남았음에도 즉각 명퇴 신청을 냈다.

이는 자신이 김 전 교육감과 같이 전교조 출신으로, 김 전 교육감과 철학, 이념이 잘 맞고, 또 그래서 김 전 교육감에게 발탁되어 핵심 측근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러나기로 작정한 그가 ‘강사 블랙리스트’를 폭로해 자신이 평생 몸담아 온 충북 교육계에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킨 것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이번 충북 교육계의 ‘강사 블랙리스트’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와는 다른 점이 있다.

단재교육연수원에는 ‘특목고 고3학년부장 진학역량 강화’, ‘반도체 팹 8대 공정직무 향상’, ‘교직원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교육’, ‘신규 교사 직무강화’ 등 연간 수 백 개의 강좌가 있다.

해마다 교직원 1만5000명 중의 6000명 정도와 일반직 3000명 전원이 이런 강의를 듣는다.

도 교육청은 올해도 수 백 개의 강의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고, 이에 대한 강사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강사 인재풀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과거 강사 명단도 참고하면서 동시에 능력 있는 사람을 새로 섭외해서 정하기도 한다.

김 원장의 SNS 글대로라면 교육청은 올해도 이런 과정에서 과거 강사 중에 새 교육감의 교육철학이나 공약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일부 강사들을 배제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 모양이다.

사정이 이런 것이라면 환경부 산하 기관장들처럼 임기가 있는 강사들을 빼고 새로운 사람을 심은 것도 아니고, 상시 고용돼 있는 강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새로운 기준에 맞게 강사진을 짜는 것은 교육청과 연수원의 정당한 일로 보인다.

또 시계를 8년 전으로 돌려보면 그때는 오랫동안 보수 쪽 교육감이었다가 진보쪽 교육감인 김 전 교육감이 새로 취임했다.

그때는 자신들과 교육철학과 이념이 맞는 새로운 강사를 뽑지 않고 전원 보수 교육감이 뽑아놓은 강사들을 계속 선임했는지 궁금하다.

한편 이번 ‘강사 블랙리스트’ 정국에는 외부 요인도 작용하고 있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교육청 안에서도 전 교육감이 임명한 감사관이 현 교육감에 맞서 이번 블랙리스트 의혹을 파헤치겠다고 우겨서 우여곡절 끝에 감사를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전·현직 교육감을 편드는 진보, 보수 단체들이 나서서 성명전과 고발전을 펼치는 바람에 순수해야 할 교육계가 진영 대결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이들의 고발 때문에 교육감과 교육청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해서 교육 행정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는 안타까운 형국까지 되고 말았다.

모두 진정하고 사건의 실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