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우연찮게도 20여 년 전 모 방송국 인기 드라마 ‘보고 또 보고’ 재방영에 옛 친구를 만난 듯 구수 텁텁하다. 마침 교장(이순재) 등장이 잦아 ‘가재는 게 편’의 반추 아닌가 싶다. “교장 선생님은 전화받기 위해 계시나요?” 학부모 전화마다 담임을 부르거나 쫓아가 따지고 달달 볶아 댔으니 당연하다. 여북했으면 보건실에 들러 장휴일(출장 등으로 교장이 학교 없는 날) 예찬까지 너스렐 떨었겠나. 필자 역시 지난 ‘무드일’ 기억과 맞장구 한다.

정년 후 금연학교를 잠깐 맡았을 때다. 강의가 달아오를 무렵 한 아이가 부르르 떨며 벌떡 일어서더니 “선생님, 담배 딱 한 모금만 빨고 오면 안 될까요?” 한바탕 박장대소와 달리 정작 숨이라도 넘어갈 위급 신호였다. 부리나케 화장실로 향하더니 금세 환해져서 돌아와 “정말 한 모금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살 것 같습니다” 방금 전과는 딴판으로 생동생동 살아났다.

금단현상을 우습게 봤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금연교육 종강 날, 소감문의 최우수상은 당해 학교 보건교사조차 포기(중독 판정) 하다시피 한 그 골초 학생의 ‘나를 살린 담배’가 뽑혔다.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는지 겸연쩍어 했다. 드라마 같았으면 진작 담배를 끊고 ‘작심 사흘’ 반전에 나섰을 텐데….

최근 촉법소년 범죄 통계다. 2017년 7897건 에서 2022년 10월 현재 1만3536건으로 5년 동안 무려 두 배 늘었고 행각까지 날로 대담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현행, 만 14세에서 한 살 낮추는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혼모와 성문제·마약과 음주·절도·폭력 등 대부분을 신체적 성숙·사회 환경변화(소외 현상 심화 텔레커뮤니케이션 발전)로 돌리지만 핵심 원인은 가정 보호기능과 학교교육의 약화 아닌가. ‘학력으로 인성을 커버할 수 있다’ VS ‘인성이 무너진 학력이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며 ‘인성=진짜 학력’ 논거를 들이대나 판정하기란 참 어렵다. 인성과 학력 둘 다 결국 조이고 푸는 일이니.

◇ 작고 가벼워야

도덕적 언설로 공정을 부르짖던 교무부장·국회의원·장관·장관 후보자까지 시험지 유출·부정 채용·허위 스펙·편입학 불공정 등 이른바 ‘음서(蔭敍)’ 뺨치는 대형 사고를 쳤다. 부모가 찌질하게 조롱 거릴 만들어 놓고 반성 기미는커녕 참 뻔뻔하다. ‘보고 또 보고’ 드라마에선 왕따시킨 반장을 체벌(손바닥 다섯 대) 한 게 학교폭력으로 비화돼 담임은 불쑥 사직서를 냈다. 그런 상황을 보며 필자라고 마음 편했겠는가. 조금 바꾸면 제자·동료 표정쯤 덩달아 환해질 수 있으련만 서툴렀던 퍼포먼스로 아물지 못할 상처를 남긴 건 아닌지 심란함에 싸인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우선순위에 뒀다. “사랑이든 욕망이든 낮고 작고 가벼워야 크고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다” 신달자 시인의 스펙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