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천 편집국장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에 상앙(商鞅)이라는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한비자와 함께 대표적인 법치주의자였다.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법은 꼭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도 없었고, 관청의 말도 신뢰하지 않았다. 

이에 상앙이 어느 날 도성 남문에 커다란 나무기둥 하나를 세우고는 “이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십 금(十金)을 주겠다”라고 방을 붙였다. 역시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아무도 그것을 옮기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상금을 오십 금(五十金)으로 올리는 방을 붙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 하나가 나무기둥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오십 금을 내주었다. 이후부터 백성들은 관청이 약속한 바는 틀림없이 지켜진다고 믿게 되었다.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그런데 2350년 정도가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정반대되는 일이 발생했다. 2020년 9월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그러자 해경과 국방부는 군 당국의 첩보 내용, 해당 공무원이 이혼 위기와 부채 문제, 월북의사 표명, 인형까지 바닷물에 띄우며 검증한 당시 해상 표류 예측 분석 등을 근거로 이 공무원이 자진 월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올해 정권이 바뀌자 해경은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2년 전 발표를 뒤집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을 잡아다 벌을 주는 경찰(해경)과 지엄한 군령이 생명인 군대(국방부)에서 자신들의 말을 합당한 이유도 없이 뒤집은 것이다.

이렇게 공공기관이 한 번 내린 결정이나 정책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뒤집힌다면 지금 하는 말과 결정도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아 많은 혼란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지금 청주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청주시가 신청사를 건립하기로 하면서 문화재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던 기존 청사인 본관을 존치할 것인지, 아니면 헐어버릴 것인지가 논란이 됐다.

청주시는 민·관의 합동 전문가들로 구성된 신청사건립특별위원회의 검토결과 대로 2018년 11월 본관을 존치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신청사를 짓되 본관을 그대로 두는 방향으로 국제설계 공모까지 해서 노르웨이 스노헤타 건축사 사무소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고 후속 설계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올해 시장이 바뀌고, 새로운 시장이 본관 철거 의지를 밝히자 청주시의 입장도 바뀌었다. 청주시의 신청사 건립 태스크포스팀이 지난 9월 본관을 철거하고 설계도 재공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앞서 청주시는 2021년 12월 시민단체에 보낸 공문에서도 “본관 건물은 존치할 것이다. 본관 건물 활용계획을 수립하여 등록문화재 등록을 신청할 것이다”라고 밝혔으니 불과 9개월 만에 자신들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정책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이 바뀔 때에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바뀌는 과정에서도 토론회, 공청회, 여론조사 등 합당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 지난 시절 판단을 잘못했으면 어떻게, 왜, 무슨 판단이 잘못되었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를 해야 한다.

설계비 등 100억원 정도의 시민 혈세를 낭비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아무런 설명과 설득 없이 자신들의 의견대로 밀어붙인다면 ‘독단’이라는 비난은 물론 잘못된 후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위정자는 공자가 말한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 한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