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얼마 전 질병과 채무로 시달림을 받던 세 모녀의 극단적인 선택이 신문에 보도됐다. 어디 세 모녀만의 비극인가. 사업에 실패한 가장이 부인과 딸을 데리고 차를 몰아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달에도 모 지역의 보육원에서 독립한 18세 새내기 대학생이 극단 선택을 했다. 올해 초 보육원을 나와 대학기숙사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학생지원금 500만원과 개인 생활비 200만원 가량을 모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바 자리도 구하지 못한 좌절에 학생은 얼마나 참담한 심경을 느꼈을까. 고아로 살아 온 학생이 외로움과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17개 시·도 5개년(2013~2017) 전국 자살사망 분석’에 따르면 17개 시·도 중 1인 가구, 여성의 극단적 선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전, 충청권이었다.

해당 기간 동안 대전은 여성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 전체 34.1%를 차지하며 서울 33%, 대구 31.5% 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세종시도 30.5%로 그 다음을 잇고 충북도 전국 상위를 기록했다.

전남광주지역의 경우도 극단 선택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자살예방센터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한해에만 광주 326건, 전남 526건의 극단 선택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세 모녀의 극단적인 비극에서 보듯이 쪽방이나 원룸에서 굶어가는 국민들이 있어도 제대로 실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 말단 행정기관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노정하고 있다.

이런 비극적인 사연이 알려질 때 마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한다. 정부는 내년도에 예산을 확충하여 빈곤층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가을, 겨울이 문제다.

정치권의 대응이나 국회에서의 대정부질의도 정치논쟁에만 빠져 있다. 국론분열의 담론만을 즐기는 것인가. 도대체 국민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대책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없다.

조선 태종은 만년에 아침 어전회의를 세자(세종)가 주재토록 했다. 세자는 전국 관찰사들이 올린 지역 구황에 대한 보고를 가장 먼저 다뤘다. 어느 지역에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지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살폈다. 긴급히 식량을 지원할 지역이 있으면 관곡을 풀도록 하고, 모자라면 궁중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내려 보냈다.

지방 목민관을 임명할 때 임금은 친히 편전으로 불러 당부한다. ‘경은 과인을 대신하여 한 고을을 책임진 것이니 굶주린 자가 없는지. 참담하게 사는 백성들이 없는지 살피고, 살피라’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살펴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여,야당은 당권경쟁이나 상대 당을 혐오, 비난하는 것만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어렵고 가난하게 사는 국민들의 비극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민생 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이 협치를 해야만 한다.

가난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나 홀로 국민만 3백4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새 정부의 보다 치밀한 대응책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