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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체력 갖춘 인재 양성에 힘쓰겠다"<동영상>세종초대석 - 이국노 한국예도문화장학체육재단 이사장
홍종우 기자  |  jwhong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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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19  18: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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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노(65) 한국예도문화장학체육재단 이사장은 충북 청주기계공고와 한양대 공대 재료공학과 졸업 후 기업인으로 사회에 진출한 인물이다. 단돈 3만원으로 창업한 ㈜지주 현 ㈜사이몬)을 연매출 700억 원 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우고 9년 간 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으며 쓰레기종량제를 제안하기도 한 대표적 자수성가형 CEO다.

30대 때부터는 검도를 수련하며 체력을 스스로 지켰고 40여 년 검도 경력 동안 국가대표를 두 번 지냈으며 아시아선수권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검도 고단자는 9단이 조승룡 1명, 8단이 이종림·전영술·고규철 등 40여 명, 7단이 이 이사장을 비롯해 강호훈·박동철·박상범 등 200여 명 정도로 수가 적다.

그에게는 초대 이사장, 초대협회장, 상하수도협회 초대 이사, 상하수도인 골프모임인 수운회 초대 회장 등 ‘초대’라는 명칭이 무수하다. 그만큼 개척정신이 강하고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3월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사이몬의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공부보다 예(禮)와 도(道)를 갖춘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데 남은 생을 바치고 싶다며 사재를 출연,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제2의 삶에 들어섰다. 이 이사장을 만나 재단을 설립한 계기, 검도 수련 이유, 좌우명 등을 들어봤다.


   
▲ 이국노 한국예도문화장학체육재단 이사장.
Q.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한국예도문화원을 설립하고 건강한 체력, 건강한 정신, 건강한 지식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중견기업 오너가 예도에 100억원을 쾌척한 까닭이 무엇인가.

A. 나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진천에서 중학교, 청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어릴 때부터 운동, 특히 가라테를 좋아했고 청주에서는 검도를 했다. 지금까지 검도를 수련하면서 현재 대한검도회 부회장이다. 내가 인생을 65년 살아보니 공부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건강한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일반 장학재단과는 다르게 공부는 어느 정도 하되 체력이 있는 사람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재단을 만들게 됐다.


Q. 현재 검도 공인 7단이고 최근 8단 심사에 도전했다 떨어졌다 알고 있다. 본인에게 검도란 무엇이며 늦은 나이에 8단에 도전한 이유는.

A. 검도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예라고 한다. 도장에 들어갈 때 신발부터 정돈해야 하고 스승에 대한 예, 동료 간의 예를 아주 중요시하는 운동이다. 특히 과거에는 검도가 일본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다른 각도에서 봐야 된다. 우리나라 검도가 일본으로 전수됐다는 역사적 의미도 많다. 그동안 내가 검도를 쭉 해오다가 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자원출하협회 회장 등을 10여 년 하면서 제대로 운동을 못 했다. 그래서 6∼7년 전부터 다시 검도를 시작했는데 8단 시험을 보려면 7단을 따고 10년 이상 수련해야 한다.

내가 세 번 떨어졌는데 현직 검도협회 부회장이 세 번 떨어지니까 사람들이 일단은 그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떨어졌을까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기네스북에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험이 일본의 검도 8단이라고 등재돼 있다. 일본의 경우 10년 이상 수련한 1천 명이 검도 8단 시험을 봐서 7∼8명 정도가 합격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 간 보니까 1년에 한 명 정도 된다. 굉장히 어렵다. 내가 지금까지 안 된 것에 대해 불만은 없고 한 마디로 실력이 모자라다.

혹은 아직 검도 8단이라는 입신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데 처음 실패했을 때까지는 그렇게 좋은 마음을 먹었지만 두 번째 떨어졌을 때는 화병으로 한 달 간 병원에 다녔다. 오죽하면 심사위원들에게 한 달짜리 진단서를 끊어서 보냈다. 그래서 세 번째는 좀 봐주려니 했는데 또 떨어졌다. 이번에 떨어진 건 역시 수양을 더 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나. 내가 어느 정도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이론적인 건 익혔고 검도 서적도 수백 권 봤으며 칼끝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단계에까지도 거의 왔지만 아직 뭔가 조금 부족해서 떨어진 것 같은데 조금 창피하다.


Q. 1973년 왕십리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설립한 ‘지주’를 지금은 국내 플라스틱 업계 2위인 ㈜사이몬으로 성장시켰다. 그동안의 고비와 보람은.

A. 당시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60세 전후까지는 쟁취를 했지, 누구 덕을 보거나 크게 실력이 있어서 뭘 이렇게 하거나 그래오지 않았다. 그냥 악을 쓰고 열심히 일해서 여기까지 왔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계를 보면 플라스틱으로 파이프를 만드는 공장이 지금까지 600개 정도 생겼다. 그 중 가장 오래된 회사가 1968년에 생겼고 그다음 우리 회사가 생겼는데 이 두 회사가 40년 동안 한 가지 품목을 만들고 있다. 나머진 다 부도나거나 주인이 바뀌는 등 잘못됐는데 그만큼 장수기업이 되는 게 어렵다.

내가 볼 때는 특별한 경영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게 첫째이고 두 번째는 일을 하면서 나는 돈보다 정의를 선택했다. 내 아들에게도 경영 노하우를 넘겨줄 때 돈이냐 정의냐를 선택하게 되면 정의를 고르라고 했다. 그게 아버지가 네게 물려줄 수 있는 경영 노하우라고 했다. 그렇게 정의에 입각해서 열심히 해 지금까지 왔을 뿐, 특별히 내가 뭘 발명하거나 한 것은 없다.


Q. 1990년대 후반 북한 신덕샘물을 수입, 판매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행보이고 개척정신이 돋보이는데 당시 상황을 들려달라.

A. 당시에는 신문에 현대판 봉이 김선달 이국노라고 대대적으로 나기도 했다. 북한의 신덕산 샘물이 천연기념물 제244호다. 그 물을 한국에 갖고 온 대신 우리가 플라스틱 제품을 보내기로 계약했다. 남포 옆에 신덕산이 있는데 거기에 생수공장을 차려야 했다. 그때 일본 조총련이 자금 30억 원을 대고 두산중공업이 물주입기를 만들어 공장을 차렸다. 내가 당시 플라스틱조합 이사장이었는데 조합업체들이 플라스틱 물통을 만들었다. 한 말짜리를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드는데 가격이 1만8천원 정도였다.

우리는 조합업체들로부터 물통을 받아서 그걸 북에 보내 물을 담아 가져오면 판매해 그 대금을 플라스틱 제품으로 주도록 계약했는데 당시에는 외국 것이 못 들어오게 물의 수명이란 게 있었다. 그게 6개월이었는데 우리가 북한 남포에서 인천항으로 들여와 인천항에서 수질검사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판매하려고 보니까 6개월 10일이 지났다. 그래서 처음 가져온 물은 전부 공짜로 나눠줬다. 다행히 우리가 항의해 운송 기간을 2∼3개월로 줄이고 물 수명을 1년으로 고쳤다.

그런데 북한이 재미있는 게 예를 들어 물통 1만8천원 짜리가 1천개 올라가면 돌아오는 건 850∼900개였다. 10%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북한에 17번을 왔다 갔다 해야 본전이 나오는데 가기만 하면 물통이 없어지니 이유를 물어보니까 간장통으로 훔쳐가는 사람도 있고 평양의 높으신 분 갖다 줘야 한다며 가져가기도 한다는 거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적자였다. 또 북한이 현금을 요구했다. 그래서 손해만 5∼6억 원 보고 손을 들었다.


   
▲ 이 이사장이 본보 홍종우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Q. 공개석상에서 고건 전 서울시장에게 총회 기본 형식을 지켜달라고 지적, 화제를 모았는데 당시 상황은.

A. 우리나라에 상하수도협회라는 걸 만들었다. 거기 이사들이 충북도지사와 각 시·군 시장과 군수였는데 나는 상하수도 제조업체 대표로 이사에 선임됐다. 초대 상하수도협회 회장이 고건 서울시장이었다. 원래 회의에는 식순이라는 게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성원보고, 안건 심의 등을 해야 하는 건데 육사 출신인 사회자가 잘 몰랐던 모양이다. 식순은 고사하고 인사말도 없이 진행했다. 성원보고를 안 하면 절차상 문제가 생겨 회의가 무효로 된다. 그때 굉장히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내가 의장을 불러 잘못됐다고 해 다시 시작했다. 그때 사회자가 결국 국장 진급을 못 했다. 그래서 내가 원망 아닌 원망을 듣고 있다.


Q. 고향 후배와 고향 발전을 위해 한 마디 들려달라.

A. 호랑이도 죽을 때는 자기 굴을 찾아가 죽는다고 하지 않나. 나도 나이 들수록 고향 생각이 나더라. 내가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등에 선물을 하고 고향 사람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는다. 옛날에 내가 단체장 등을 맡고 있을 때는 고향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오라고 했다.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주겠다고. 충북은 위치가 좋은데 늘 경상도, 전라도 정치판의 중간에 껴서 나름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여력이 부족하지 않나. 그렇더라도 그걸 잘 이용해서 올바르게 산다면 문제가 있겠는가 한다.


Q. 좌우명과 취미, 가족 관계는.

A. 알다시피 검도를 하고 있다. 또 쉬는 날엔 골프도 치고 하면서 여러 운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죄우명이라면 ‘나는 남과 다르다’가 우리 집 가훈이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남과 다르게, 좀 더 좋게 살아보자 하며 살고 있고 우리 회사 사훈이 ‘입정(立正)’이다. 올바른 것을 세우자는 의미인데 아까도 정의를 얘기했지만 아무튼 사업을 하든, 친구를 사귀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첫째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누가 내게 덕담을 해달라고 하면 꼭 이 얘기를 한다. 중용이라는 책이 있는데 좋은 말을 골라 아주 작게 만든 책이다. 그 책의 전체적인 의미는 멀리 있는 친구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하고 가까이 있는 친구가 나를 싫어하지 않게 사는 것이다. 그게 중용의 길이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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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세우기위한 외길40년 겉치레보다 내실을 위하여 사업을 운영하시고, 청소년들의 체력증진과 예와 도를 위하여 장학사업을 하시는 이국로 회장님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2012-03-22 2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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