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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문학관 ‘성공학’ 교육장으로
이재준  |  limle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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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8  11: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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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조선 숙종 대 증평 출신 시인 한 분이 ‘최고 시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바로 독서왕으로 일컬어지는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이다. 한문 4대가 였던 택당 이식(澤堂 李植)과 효종대왕마저 시를 읽고는 극찬했다고 하니 분명 훌륭한 인물이다. 김득신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백곡은 1604년(선조 37년)에 태어나 숙종 때 까지 81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편이다.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아 지각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백곡을 부단한 노력파이자 최고의 시인으로 만든 힘이 되었다.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들을 질책하기보다는 격려했으며 스스로의 노력을 당부했다.

‘학문 성취가 늦는다고 성공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라.’

백곡은 부친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노력을 한다. 소년 시절부터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하여 읽었다. 일화를 보면 ‘사기열전’ 중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이나 읽었으며 다른 유학서도 1만 번 이상 독파했다고 한다.

그는 벼슬에 오른 시기가 늦었다. 10대에 대부분 합격하는 사마시도 39세의 나이에 통과 한다. 다른 양반 같으면 판서 정승에 오를 나이. 대과 급제는 59세에 했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쉴 나이에 대과에 올라 장안에 화제를 뿌린다. 결국 백곡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직에서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낙향한 백곡은 많은 시를 남겼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많이 없어져 백곡집 하나만 남게 됐다. 산촌의 4계를 한국화 같이 묘사하여 당대 문인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택당 이식이 시를 읽고는 ‘그대의 시가 제일이다’라고 평한 것이다. 백곡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 같은 명언이 실려 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따름이다.’

증평군이 지난해 12월 개관한 ‘김득신 문학관’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사료 확보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문학관은 45억원을 들여 증평읍 송산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연면적 1906㎡)로 세운 것인데 상설 전시실, 수장고, 문예 배움실, 회의실, 학습실, 휴게시설을 갖추고 있다.

증평인 백곡의 삶과 성공은 이 시대에도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불리한 환경이나 머리를 탓하며 중도에 곧잘 포기해 버리는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만한 스토리텔링이다. ‘부단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 할 수 있다’ 백곡문학관이 ‘성공학’ 교육장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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