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첫 장편소설 '어느덧 일요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전수찬(43)씨가 7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오래된 빛'(문학동네 펴냄)을 내놨다.

'어느덧 일요일'에서 불륜 남녀가 일주일 동안 겪은 이야기를 경쾌한 문장으로 그린 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두 가족에 얽힌 비극과 아이러니를 소재로 삼았다.

창호네는 공무원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단란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 어머니는 두 아들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나간 초등학교 6년생 막내 창호가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 뒤 창호는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다.

막내의 갑작스런 죽음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날 밤 집에는 미친 영혼들이 돌아다녔다. 아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통곡하다 구토하고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집 앞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미친 망령의 야유처럼 울려 퍼졌다."(30~31쪽)
거의 정신을 놓은 어머니는 집을 뛰쳐나가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아버지는 술에 기대 하루하루를 버틴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가족은 기환네다. 외아들 기환이는 창호와 같은 반 동기다.

뚱뚱한 체격 탓에 '돼지'라 불리는 기환은 창호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 수시로 돈을 뺏고 주먹을 날린다.

그러다가 기환은 반항하는 창호를 길들이고자 밤에 산으로 나오라고 명령한다. 어둠이 깊어 기환은 창호를 만나지 못하지만, 창호는 길을 잃고 실족사하고 만다. 기환은 '간접 살인자'가 된 셈이다.

가해자인 기환네는 과거를 잊고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지만 오히려 불행의 그늘은 깊어간다. 기환은 술에 전 대학생이 돼 집단 폭행을 당하고, 사업가인 아버지는 비리가 노출될 위기에 처한다.

와중에 창호의 아버지는 기환네를 쫓아 이사한다. 그가 짊어졌던 고통을 되돌려주기 위한 마음에서다.

기환네를 감시하던 창호의 아버지는 "아들을 두들겨 패는 그자(기환의 아버지)를 몇 번 본 뒤에 어쨌든 마음의 안정"(30쪽)을 찾는다. 창호의 다른 가족들도 고통의 시간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이 같은 아이러니가 담긴 이 작품에 대해 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의 삶이, 또는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이 결국 사랑이라 하더라도, 나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속성이 비극임을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고, 그래도 우리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했다.

208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