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를 '삼겹살의 고장'이라고 한다. 1970년대 정육점이 딸린 허름한 식당에서 연탄불에 구워먹던 삼겹살은 최고의 별미였다. 생고기에 소금을 뿌려 구워먹는 소금구이로 시작된 삼겹살 조리법은 연탄대신 가스가 일반화 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불에 단 철판 위에 간장 양념을 적신 고기를 올려 익힌, 간간하게 양념 맛이 밴 고기를 즐기게 됐는데, 전국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이한 맛 때문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 그 다음 인기몰이를 한 것이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파무침과 곁들여 먹던 돼지고기 구이다. 칼칼한 고기 맛도 중독성이 있었지만 고기를 구어 먹고 난 다음 남은 양념과 김치 등을 넣고 볶은 볶음밥의 맛이 특별했다.

청주를 찾은 외지인들이 유난히 많은 삼겹살집 간판들을 보고 청주를 ‘삼겹살의 고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역 관광 책자나 홍보사이트에도 청주의 대표음식은 삼겹살로 소개되었다. 그래서 청주사람들은 ‘삼겹살’만 먹고 사는 것처럼 오해를 받는 일이 종종 발생했지만 청주에서 발견된 조리서 등 음식문화 관련 문헌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국립민속박물관이 2007년 수집한 '반찬등속'이라는 필사본 한글 조리서를 연구한 논문이 최근 발표되면서 청주의 전통음식이 베일을 벗게 됐다. 저자 미상의 ‘반찬등속’은 전체 32장으로 1913년 지금의 강서2동인 청주 상신마을의 한 집안에서 작성된 것인데, 아기자기한 토속 반찬조리법이 담겨 있다.

옛날 청주 사람들이 집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먹었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잃어버린 혈육을 만나 제 뿌리를 찾게 된 것처럼 신바람이 난다.

조리서에 등장하는 음식은 김치, 짠지, 반찬, 과자, 떡, 음료 등으로 구분된다. 종류는 고춧잎짠지, 마늘짠지, 파짠지, 박짠지, 콩짠지, 북어짠지, 전복짠지, 북어무침, 북어대강이, 가물치회, 오리고기, 육회, 전골지짐, 산자, 과줄, 중박기, 주악, 박고지, 증편, 백편, 꿀떡, 화병, 수정과, 과주, 연잎술, 약밥, 만두 등 모두 46가지다.

내륙인 청주에서 어물을 많이 썼다는 점이 특이한데, 강경 등을 통해 어물을 들여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무를 사용한 요리가 많고 저장 음식이 다양한 청주음식은 요즘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저 열량의 웰빙음식이다.

‘반찬등속’ 안에서 46가지나 되는 향토음식 쏟아져 나왔으니, 기름 줄줄 흐르는 삼겹살은 이제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