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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필살기
오병익  |  obi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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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7  15: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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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꽃 대접은커녕 성가신 잡풀로 밀려났던 개망초도 메밀밭보다 하얀 꽃 되어 뽐내던 여름, 유난스런 더위가 농심 산심 어심 도심까지 말라붙이더니 어느 새 움텄는지 고추잠자리 유영에 계절을 바꾼다. 훌쩍 자란 추석 달로 믿는 구석도 생겼다. 계수나무와 토끼보다 어렸을 적 고향이 또렷하다. 부모의 아픈 손가락은 아니었는지 눈물까지 핑 돈다.

주 촬영지가 청주 수암골인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이복형제였다. 성장과정 속에서 갈등은 말할 수 없었다. 사사건건 쪽박을 깨는 몰염치한 동생과 마찰이 심할수록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갈 힘은 단단해졌다. 마침내 두 사람 손목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 사흘 동안 인내를 삭여 고질적인 생각 변화를 이끈 양보와 희생 앞에 서서히 눅눅해진 팔봉 빵집, 한가위 준비가 궁금하다.

자식은 드라마 이상으로 배부른 최고 지존(至尊)이다. 걱정 쯤 언제 그랬느냐 싶게 녹이는 묘약과 같다. 장남은 맏이라서 막내는 또 끄트머리여서 안쓰러워하는 게 부모다.

필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날짜가 채 한 달도 안 떠 있다. 추석 전, 팔남매는 보름달처럼 둘러 앉아 송편을 빚었다. 크기와 모양이 멋대로 여서 솔잎을 깔아 쪄내면 작품은 더 배꼽을 쥐게 했다.

다섯 째 아들인 필자가 5km나 되는 읍내중학교에 합격하던 날, 번호를 먼저 찾아내시곤 아버지 등에 업고 세상을 다 얻으신 양 빙글빙글 맴도셨다. 그 길로 장터를 들러 비싼 교모와 가방을 사 주셨다. 3년 후 고등학교에 합격하던 날은 아버지를 처음 업어 본 최고 황홀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아버진 생각보다 너무 가벼우셨다. 100세 시대, 부도란 걸 어렴풋이 느꼈다. 누구나 두 번 부모와 이별을 한다지만 내 나이 열여덟으로 감당하기 겨운 충격이었다.

혼자되신 어머니는 '내 젤로 기쁜 날이 언젠 줄 알아? 우리 팔남매 한자리서 웃는 거여.' 생전 말씀이 살아난다. 자식들에게 "대박은 없다"며 특(special)보다 룰(rule)에 엄격하셨다. 이따끔 자식 집을 들르신 날엔 "아들·며느리 오손도손 사는 것 봤음 됐지. 잠자리가 바뀌면 밤이 너무 길다"며 나그네처럼 떠나셨다.

어디 그뿐이랴. 종갓집 며느리로 4대 봉사의 아홉 조상 제사까지 지극정성을 쏟으셨다. 기일은 귀신에게 알려야한다며 종일 부침개 고소한 기름 냄새로 집안 곳곳에 진동시켰다. 침묵을 사랑하고 평생 자식의 무대를 꼼꼼히 준비하신 너른 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이 멎은 한참 후에야 눈을 감으신 그리움의 덕지가 묻어난다. 하늘 먼저 낮아지니 떠났던 생각들 자리하고 한가위 보름달 쯤 고운 멍으로 그 어떤 교학상장보다 살아있는 강 되어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추석은 대체 휴일까지 닷새다. 지난 주 벌초 행렬도 대단했다. 귀성 전쟁 역시 우쭐한 우리 민족고유의 분위기다. 명절은 피붙이 끼리 만남을 이어주고 한자리에 모여 끈끈함을 다지는 통로다. 그러나 벌써부터 '빚진 자식만 내 새끼'란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히면서 자식들은 지난 날 기억마저 잊은 채 고통의 집을 짓는다.

마냥 기다려줄 부모, 그러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살아생전 일배주(一杯酒)라 했다. 남의 일엔 앞장서 번쩍번쩍 광을 뿜으면서 정작 지켜야할 때를 구분 못하는 이런저런 핑계도 못된 습관 중 하나다. 자식이 자식답고 형제자매가 우애로우며 고향의 품이 따스할 때 엄지 척 추석도 보장되리라.

등 떠밀려 나온 맞선자리마냥 멀뚱거리다 끝내 "네가 잘했니 내가 못났지" 부모형제 울화를 치밀게 한다. 개중엔 '명절 증후군'을 따지다 이혼 빌미 곤죽을 만든다. 어디 그 뿐이랴. 존속 상해와 재산 다툼으로 원고와 피고가 돼 법정에서 마주하는 혼란한 천륜 파기도 명절 흠이다.

부끄럽다. 그래서 주문한다. 제발, "되는 일 없다"며 탄식 하지 마라. 듣는 사람 복창 터진다. 골잡이가 되려고 우쭐거리지도 마라. 보는 사람 기운 빠진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호흡만 참으면 고향 길, 도톰하게 살찌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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