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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인의 애증 JP김춘길 주필 겸 대기자
김춘길  |  kck90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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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22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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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던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가 지난 주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정치 노병(老兵)이 정치판에 그 이름을 떠올린 것이다. 사연인즉 새누리당(전 한나라당) 명예고문이었던 JP가 그 당을 탈당하고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와 회동, “선진당이 어려운 만큼 할 수 있는 내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힌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금년 4.11 총선과 12.19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통보수인 JP가 보수당일 수밖에 없는 박근혜의 새누리당을 떠난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JP는 지난 17일 자신을 찾아온 새누리당 권영세 사무총장에게“새누리당에 미움이 있거나 섭섭해서 나가는 게 아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란 말이 있듯 사라지는 준비를 하는 것에 불과하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말했다지만, 정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JP가 새누리당과 작별을 고한 것은 첫째,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이제는 정통보수당이 아니라는 평가를 한 것 같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 입당하여 지원 유세까지 했는데도 현 정부가 자신을 홀대했다는 노여움의 발로 가능성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촌 처제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당을 함께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표시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추측은 ‘타협의 정치’를 걸어온 JP와 ‘원칙의 정치’를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비대위원장간의 정치철학의 서로 다름에 따라 빚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

어떻든 JP의 이같은 행보를 보면서 충청인들은 그에 대한 애증(愛憎)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JP를 그래도 좋아하는 충청인들은 충남 부여출신인 그가 대한민국 수립 후 충청권을 대표한 정치인으로 꼽는데 주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질녀와 결혼, 5.16군사혁명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초대중앙정보부장 시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이후 최다 9선 국회의원(김영삼. 박준규도 같다) 과 제11대. 제31대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경력을 다른 충청인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 정치적 행보 종지부 찍는 게 순리

그러나 JP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그가 권력의 양지만을 쫓아 여기저기와 손잡고 ‘2인자 노릇’만을 즐겼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1990년 초 신민주공화당을 이끌던 JP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통합,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켜 3당 합당의 대표위원과 김영삼 정부 초기 민자당의 대표가 됐으나 김 대통령과 불화, 다시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그리고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JP는 DJP연합을 통해 이념이 다른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보수 세력으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JP는 박정희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정권탄생에 크게 기여했으면서도 ‘권력의 정상’에 한 번도 서지 못한 채 ‘영원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JP가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본인의 포용능력도 문제지만)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면 충청출신 대통령이 탄생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적 행보에 종지부를 찍는 게 순리일 터이다.

JP는 1926년 병인(丙寅)생으로 올해 86세다. 그는 어느 때 “인생의 황혼을 벌겋게 물들이며 가고자 한다고” 했다. ‘2인자 처세술의 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JP는 1980년 전두환의 군부에 부정축재자로 체포되어 지하 감옥에 수감 시 찾아온 수경사령관 노태우 소장에게 박정희 시절의 2인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들려주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처세술을 일러 주었다. “1인자(전두환)에게 밉보이지 말 것. 전두환이 서운하게 하더라도 절대 서운한 표정을 해서는 안 되며 서운함을 드러냈을 경우 아랫사람과 주변의 이간질하는 세력이 나타나 관계를 악화 시킨다.” 이런 처세술을 구사했기에 JP가 ‘끈질긴 2인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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