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데일리
칼럼칼럼
만절필동의 의미
이재준  |  limlee9@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2.22  10:42:4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괴산 청천 화양구곡은 대한민국 명승고적 제1호로 지정된 곳이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과 역사유적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곳이다. 화양동은 송나라 주자의 고향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모방하여 유학의 성지를 경영하려 했던 우암(尤庵) 송시열이 은거했던 곳으로 그의 철학과 조선의 모화사상을 대표하는 역사의 잔영이다.

구곡(九曲) 가운데 하나가 첨성대라는 곳이다. 첨성대라면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자리라고 하여 명명 된 것인가. 그런데 암벽에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각자다

이는 누구 글씨이며 또 뜻은 무엇인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하나인 순자(荀子)가 쓴 말로 ‘황하(黃河)가 만 번 굽이쳐도 결국은 동(東)으로 간다’는 뜻(荀子·宥坐 以出以入,以就鲜絜,似善化。其万折也必东,似志。是故君子见大水必观焉)이다. 본래 중국에서는 변하지 않는 충신의 절개를 빗댄 용어로 쓰여 졌다.

이 글씨 아래는 화양서원이란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만절필동은 조선 선조의 어필이며 밑의 화양서원은 숙종의 글씨다. 우암은 왜 선조 친필을 별자리를 바라보는 듯한 첨성대에 각자한 것일까. 그는 임진전쟁 당시 조선을 도아 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유학자다. 그에게 있어 대명의리(對明義理)는 불변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다른 암벽에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이란 글씨가 각자되어 있다.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유교의 가르침이다. 명나라 황제 의종의 친필로 우암의 친구 민정중(閔鼎重)이 연경에 사신으로 갈 때 구해 온 것이다. 우암은 이를 정성스럽게 받아 화양구곡에 각자하여 스스로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을 다짐했다.

우암의 뼈에 사무치는 한(恨)은 바로 주자의 성지를 무너뜨린 청나라에 대한 복수였다. 그는 효종에게 글을 올려 북벌을 준비한다. 그것이 유명한 ‘기축봉사(己丑封事)’다. ‘기축봉사’의 내용은 주자에 대한 존경과 청에 대한 복수(復讎)를 주장한 것으로 우리 역사상 대륙정복의 야침 찬 프로젝트였다.

이는 중화(中華)를 계승 할 나라는 조선뿐이라는 자의식과, 야만 청에게는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우월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화양동을 경영하면서 우암의 이런 철학은 철저하게 녹아들었다. 만절필동은 청나라 지배를 무력으로 꺾고 반드시 중화를 되돌려야 한다는 숨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화양(華陽)이란 이름도 중화에 대한 숭모에서 나온 것이며 그가 사약을 받고 죽어 가면서도 제자들에게 명나라와의 의리를 위해 만동묘(萬東廟)를 지으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동묘라는 명나라 의종, 신종 두 황제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이름은 만절필동을 줄인 말이다. 이 시기 선비들은 경기도 가평군 조종암에도 선조의 글을 얻어다 ’만절필동‘을 각자한다. 우암과 같은 시기를 살던 처사 허격 등이 명나라의 은혜와, 병자호란에 대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藩邦....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 주었네)'을 각자했다.

조선 후기 까지 선비사회에는 대명의리 사상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특히 소론 보다는 노론계통의 유학자들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충북 충주의 금가면 200년 고가 건물을 수리할 당시 나온 상량문을 보니 ‘숭정기원후운운(崇禎紀元後云云)’라는 묵기가 나왔다. 명나라가 멸망 한지 3백년이 지났는데도 유학자들은 명나라에 대한 존숭의지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최근 노영민 주중대사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는 글을 써서 논란의 중심에 있다. 노대사는 청주출신으로 화양동 역사에 대해 이해가 많은 탓이었나. 그러나 이 표현만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로서는 적절치 않다.

역사는 지나간 시대의 거울일 뿐이다. 중국과의 갈등 해소가 아무리 시급하다고 해도 대통령부터 대사 공직자에 이르기 까지 주권국가의 자존심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

< 저작권자 © 세종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내수동로 114번길 66(사창동, 청주스포츠타운)  |  대표전화 : 043)273-2580  |  팩스 : 043)274-2580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충북 아 00065  |  등록일자 : 2011.08.24  |  발행ㆍ편집인 : 김태순  |  청소년보호 책임자 : 김태순
Copyright 2011 세종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sjdail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