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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딜레마
오병익  |  obi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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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4  2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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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가을 산을 칠하다가 너무 빨개서 / 덧칠한 흰색에 꽁꽁 언 겨울 / 얼음은 녹이려고 찍어 본 노랑 / 붓 끝에 매달려 피는 개나리 / 잎 새도 그리려고 녹색을 들면 / 도화지는 어느 새 메아리 소리 / 필자의 동시 ‘물감 칠하기’ 전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네 계절 중 45%이상 유독 가을을 꼽는 이유를 알겠다. 추석 명절 기간인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열흘 동안 국민 장기 휴가다. 가족·직장부터 건강해야 주체적 영역도 넓어진다며 ‘쉴 권리’를 먼저 누린 문대통령의 선거공약 이행차원 보너스 아니던가.

최근, 법인카드 사용과 직원 차량까지 이용해가며 휴가를 즐긴 모 처장을 비롯한 몇몇 각료의 비상시국·선제적 대응 등 소홀함과 달리 ‘지금은 일할 때’를 솔선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박수가 쏠린다. 충혈된 눈과 부르튼 입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취임 초기 경제정책을 자수성가형 수장다운 업무스타일로 꿰뚫었다는 보도에 모처럼 관가의 믿음을 붙잡아 준다.

휴가가 얼마나 말랑말랑한 동화 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요리된 맛깔스런 여유요 생명이요 미래라는 것까지 말이다. 그러나 지난 여름 집중 폭우에 엄청난 수해를 입은 현장을 찾아 봉사 휴가로 땀 흘린 사람,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를 위해 주민 곁에서 휴가를 몽땅 쓴 해당분야 장관처럼 스스로 여유를 달궈 찬란하게 자기 그릇을 굽는 사례도 마주한다. 누군들 쉼 앞에 고개 저을 사람 있을까마는 모처럼 일감 몰린 명절 특수인데 ‘휴가 타령’하는 걸 보면 논리적 비약이다.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경우 긴 연휴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불황 타개나 내수 진작은커녕 경제위기를 돌파하려다 깜짝쇼란 낭패는 아닐지 조심스럽다. 고속도로를 공짜로 달리고 볼만한 곳을 무료 개방해도 추석 해외 여행수요가 예측을 훌쩍 뛰어 넘었다. 한국 관광객 유치 경쟁에 다른 나라 눈빛마저 달라진 게 현실이다.

화려한 휴가의 성찬이 아니라 다시 허리띠를 졸라 얼어붙은 희망을 일궈야할 때다.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벗으려고 내키지 않는 휴가를 쓰거나 결재한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시각에서 어차피 본인 선택일수 밖에 없다. 제반 눈치코치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소통과 지혜가 견인되는 것처럼 훌훌 털고 채움을 반복하며 여물어야 진짜 휴가다. 문제는 ‘과유불급’이다. 그냥 먹고 마시고 일그러지다보면 되레 또 다른 치유로 휴가기간 이상 소요해야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필자에겐 휴가의 아픔이 남 다르다. 백세 시대 칠순 문턱도 오르기 전, 대학 절친 40여년 지기(金甲式)가 올해 초여름 머나먼 저승 휴가를 떠났다. 4남매 가장으로 고달픈 살림살이에도 ‘바다의 노래·청주시민 노래’ 작사 당선 상금 전액을 소외이웃에 기부하는 등 2세를 위한 교육의 무거운 짐을 쉼표 없이 풀어내느라 꺼풀만 남은 장단지가 평생 고집스런 휴머니즘을 대변해 준다.

아직 필자의 휴대폰에 생생하게 찍혀있는 카톡, “내 휴가가 너무 긴 게 안쓰러워 인지 병실 밖으로 아침마다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날아와 고운 노래로 날 위로하네.” 기약 없는 친구 영혼 앞에 휴가의 실체적 맥락 쯤 그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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