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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단상(斷想)박걸순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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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4  13: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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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일본의 한 극우 단체 회원들이 대마도 선착장에서 입도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향해 일장기를 휘두르며 확성기를 사용하여 “조센징은 대마도에서 떠나라”고 소리치며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들은 이에 항의하는 우리나라 관광객의 몸짓을 문제 삼아 ‘폭력적’이라는 자막까지 넣어 이를 홍보하였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한 공중파 방송이 대마도에 한국으로부터 다수의 관광객과 낚시꾼이 몰려오는 현상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를 방송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패널들이 한국인 관광객의 입도를 영토 영유권 문제와 결부시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고, 자료 화면은 한국인 낚시꾼들이 낚시 후 뒤처리를 하지 않아 쓰레기로 더렵혀진 현장을 연거푸 방송하며 부정적 여론 몰이를 하였다고 한다.

가장 가깝고 먼 나라 일본

지난 2월 초, 필자는 대학원생 15명을 인솔하고 대마도 역사 탐방을 다녀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우리나라와 대마도와의 역사적 관계가 서려있는 유적지를 살펴보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에보시타케 전망대에 오르니 대마도의 하롱베이라고 칭송하는 아름다운 섬들을 뒤로 하고 우리나라 거제도가 희미하게 보이고, 대마도 최북단인 가미쓰시마쵸 와니우라 지역은 부산과는 불과 49.5㎞ 거리에 불과하여 여기에 있는 한국전망대에서는 부산의 야경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처럼 대마도는 부산항에서 배편으로도 1시간 10분이면 당도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적 연고를 따져 보면 일본보다는 우리나라 역사에 더욱 근접한다. 그것이 대마도 사람들이 일본 본토보다 우리나라에 더 친연성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마도 이즈하라 항구 근방의 개천 옹벽에 조선통신사 사행도(使行圖)를 그려놓은 스테인드글라스, 도로 이곳저곳에 막부에서 조선통신사를 접대한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 매년 8월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하여 진행되는 대마도 최대의 축제 아리랑 마쯔리 등은 양국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였던 조선통신사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통신사와 문화적 콤플렉스

그런데 12회 시행된 조선통신사에 대한 양국 학계의 해석은 판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막부의 요청에 의해 대규모 사행이 후진국이었던 일본에 건너가 환대를 받으며 고급문화를 전파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일본 학계에서는 양국이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하며 막부의 장군이 바뀔 때마다 사행이 왔던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며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바뀌어져 갔다. 점차 조선통신사의 사행을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론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통신사 사행을 영접하는데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경비가 들어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구실에 불과하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문화적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머무는 숙소 부근에는 본토로부터 몰려온 일본 문인들이 조선통신사 수행원으로부터 시문에 대한 첨삭을 받기 위해 오래 전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조선통신사로부터 몇 자 첨삭을 받거나 문장으로 화답을 받으면 그것을 가보로서 보관할 정도였다.

그것은 선진 고급문화에 대한 동경이자 문화적 콤플렉스였다. 이 같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문화적 콤플렉스가 근대에 들어오며 침략적 근성을 자극하였다. 그래서 허구적인 신공황후의 삼국 정벌과 임나일본부설이 역사적 사실로서 강조되었고, ‘문록(文祿) 경장(慶長)의 역(役)’이라고 부르는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승리를 강조하며 노래하였다. 매년 8월 대마도 팔번궁신사에서 신공황후의 제례를 지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팔번궁신사는 최익현을 비롯하여 한말의 항일 의병들이 유폐되어 있던 곳이었다.

아직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는 일본

대마도는 왜구의 본산이자 일본의 한국과 세계 침략의 전진기지였다. 그래서 아픈 역사의 추억도 많이 서려있다. 대마도 번주 소 다케시[宗武志]와 정략혼인의 희생양이 되었던 비운의 덕혜옹주, 최익현 등 대마도로 유폐 당한 11명의 한말 의병은 아픈 근대사의 증좌이다. 그런 그들이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대마도의 이곳저곳에서 평화를 강조하는 기념물을 세워두고 있다. 해발 385m의 고지에 위치하여 전망대로 활용되는 가미자카에는 1902년 천연 요새에 설치한 일본 함대 기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러일전쟁 때에 위력을 발휘한 시설인데, 그곳에 평화비가 세워져 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1차 세계대전 후 대한해협을 봉쇄할 목적으로 5년간의 공사 끝에 1934년 완공된 도요[豊]포대는 세계 최대의 포대로서 시험 발사까지 마치고 실전에 배치된 포대이다. 그 내부를 들어가 보니 기계실과 발전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완비되어 있어 마치 제국주의의 망령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포대의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는 이 포대가 실전에서는 단 한발도 발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같은 시설이 두 번 다시는 만들어지는 시대가 없어야 하고, 인류 영원의 평화를 간절히 바라며 1984년 현상대로 복원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여기에서 말하는 인류는 누구이며, 평화는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일본인은 아직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무참히 파괴한 전력을 지녔고, 그로 말미암아 역사에 엄청난 부채를 원죄로 지니고 있다. 그런 그들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인간성의 모라토리엄 선언에 불과하다. 오우라 항을 지나며 420년 전 조선을 향해 칼을 뽑아들고 눈알을 부라리며 공격을 명하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환영과, 확성기에 대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소리 지르던 우익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만의 환영일까?

2월 22일은 시마네현이 2005년부터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는 ‘다케시마의 날’이다. 꼭 100년 전의 그날 시마네현 고시 제41호로서 독도를 자기네 관할로 고시한 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곧 3․1절이 다가온다. 왜 대마도에서 자꾸 독도가 떠오를까? 그래서인지 대마도에서 생각하는 3․1절의 단상은 단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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