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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자의 비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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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8  19: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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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고대 질자(質子)라는 제도는 일종의 인질이었다. 왕은 지방 성주들의 배신을 막기 위해 서울에 자녀를 보내도록 했다. 유학이나 혹은 왕의 측근에서 시종을 들게 했다고 하나 사실은 인질이었다. 국가 간에도 신의를 담보하기 위해 질자를 이행했는데 고대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에도 중국 혹은 왜국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사례가 나타난다.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 충신 박제상의 기록을 보면 당시 가장 약체였던 신라의 비극적 질자 역사가 보인다. 눌지왕으로부터 고구려와 왜국(倭國)에 볼모로 간 아우들을 데려오라는 어명을 받았다.

제상은 고구려에 들어가 장수왕을 설득하여 왕제 복호(卜好)를 데려왔다. 박제상의 다음 임무는 왜국이었다. 왜국에는 신라에서 보낸 질자 미사흔(未斯欣)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제상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쳐왔다고 속인 다음 왕자 미사흔을 빼돌려 도망치게 하였다.

화가 난 왜왕(倭王)은 박제상을 불에 태워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눌지왕은 제상에게 대아찬(大阿飡) 관품을 추증했으며 제상의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했다. 제상의 부인이 치술령(鵄述嶺) 고개에 올라가 동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어서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가야 망명귀족 김유신 장군은 지금의 진천 땅인 만노군 태수 김서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만명부인은 신라왕가의 딸이었으나 왕실은 이들의 혼인을 허락하지 않은 상태였다. 유신이 15세가 되자 서라벌로 유학의 길을 떠나는데 사실상 질자였다.

유신은 왕궁으로 가 진평왕의 어머니이자 외할머니인 만호태후를 알현한다. 그때 외할머니는 꿈에도 잊지 못하는 만명의 아들이라는 말에 놀라 ‘우리 핏줄은 겨드랑이에 비늘 있는데 그것을 보자’ 했다.

유신이 등을 보이자 비늘이 있으므로 ‘아이고 내 새끼가 틀림없다’ 하면서 끌어안고 울었다고 한다. 유신은 비록 지방 태수가 보낸 질자였으나 왕궁에 기거하면서 화랑으로 낭도를 거느리는 위치를 지니게 된다.

김인문은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일찍부터 당나라 황실에 끌려가 숙위(宿衛)하였다. 비록 질자였으나 탁월한 인품으로 당 황실의 우대를 받았으며 백제 공벌 때는 당군을 영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형 문무왕을 생각하여 다시 당나라로 건너가 여생을 마쳤다. 당 황제는 그에게 높은 벼슬을 추증했다.

후백제 견훤은 지방 성주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자녀들을 완산에 보내도록 했다. 보은 회인 매곡성주였던 공직도 아들과 딸을 견훤에게 보냈는데 왕건의 매곡성 공격시 고려에 항복하고 말았다. 왕건으로부터 벼슬을 받은 공직은 견훤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으며 배신을 알게 된 견훤은 자녀들을 끔찍하게 살해했다.

병자호란 끝나고 청나라에 빈(嬪)과 함께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일국의 왕세자가 겪은 청나라 인질 생활은 어땠을까. 장막으로 가려진 거처에서 침대도 없는 삶을 오래 살아야 했다. 소현세자는 귀국 후 의문을 죽음을 당한다. 그가 질자 경험을 한 후 친청(親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버지 인조가 혐오하였으며 후궁들에 의해 독약살해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최근 망명한 북한 영국대사관 태영호 부대사의 딸이 평양에 인질로 있다는 기사를 보면 과거 질자의 고사를 방불 한다. 북한은 해외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도록 평양에 자녀들을 두게 한다는 것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외화벌이 압박까지 겹쳐 탈북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 주 러시아 외교관이 망명했는가하면 북한 유럽자금 총책인 김명철 까지 큰 자금을 가지고 탈북 했다. 최근에는 해안을 통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자유를 향한 엑소더스를 막을 수는 없다. 특히 봉건 적 잔재인 ‘질자’로 체제를 유지하려는 발상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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