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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하는 가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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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3  06: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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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조선시대 권문세가들은 골동품을 많이 소장했다. 골동을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여겨 사서 모았던 것이다. 조선 전기 안평대군, 희귀한 분재를 많이 가졌던 강희안, 후기의 화원(畵員) 서상수(徐常修) 같은 명사들은 유명한 컬렉터로 기록에 남는다.

골동은 뇌물로 혹은 매관매직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문인이었던 신위(申緯)는 ‘중인, 서리들 집에 까지 고가의 서화와 골동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글을 써 세태를 꼬집었다.

서상수는 집이 가난한 실학자 이덕무(李德懋)에게 소장품을 팔아 집을 마련해 주었다. 절친 박지원은 이덕무가 ‘맹자’를 팔아 끼니를 잇자 자신의 책을 팔아 같이 술을 마셨다는 일화가 전한다. ‘친구가 책을 팔아 생을 연명했으니 자신도 책을 팔아 친구를 즐겁게 해야 겠다’는 우정의 소장품 매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막강한 컬렉터들이 소장한 작품가운데 일부가 가짜로 채워지는 경우가 있었다. 가짜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나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충북도내 민간소장의 전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괴산에서 매우 희귀한 글씨 첩(帖)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겉장에는 송나라 휘종(徽宗)의 수적(手蹟)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휘종이라면 최고 명필가로 평가 되는 인물이다. 필자는 먹색이며 지질로 보아 근대의 가짜 작품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이 필적은 전문가들과 함께 자세히 검토한 결과 조선시대 휘종의 글씨 첩을 보고 모사한 것이었다. 수 백년 전에 휘종의 탑본을 보고 누군가 이를 베껴 그린 것이었다.

임진전쟁이후 전란으로 왕실 재산이 없어지자 전국에 내려진 어필을 진상토록 했다. 그런데 어필을 진상하면 상대한 재물과 품계가 오르는 영광을 주기 때문에 관리들이 앞을 다퉈 어필을 찾았다.

그런데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출세욕에 빠진 관리들이 어필을 위조하여 가짜 글씨를 궁중에 진상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감정가가 없어 진품으로 믿고 있다 후대에 발견되어 진상자가 처벌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가짜 그림이나 글씨는 중국에서 더욱 많았다. 소위 방품이라는 이름의 가짜인데 옥기에서부터 청동기, 도자기 회화에 걸쳐 다양했다. 조선시대 사신들이 연경에서 명품으로 알고 큰 돈을 주고 구입한 작품 가운데는 가짜가 많았다. 송나라 휘종의 글씨도 이 시기 중국에서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아닐까.

요즈음 중국에서 천문학적 작품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고(故) 장대천 화백은 본래 가짜 그림을 만들어 팔던 가난한 화가였다. 젊은 시절 그는 송, 명, 청대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사해 시중에 팔아 근근이 살았다. 진짜와 똑 같은 그림을 그렸던 장대천의 실력은 이런 토대 위에서 놀랍게 성장했던 것이다.

최근 화단에 가짜 그림 시비기 그치지 않는다. 천경자의 미인도에 이어 비구상화가이우환의 작품을 가짜로 만들어 온 일당이 붙잡혔다. 가짜 그림 실력이 진짜와 비슷하여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가수 조영남 씨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화투그림도 밑그림을 그려준 화가가 있다고 하여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예술작품은 작가의 혼이 깃 들여 져야 하는데 이런 그림들은 대작(代作)에 불과할 뿐이다. 조씨는 외국의 예를 들어 자신의 작품은 협업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남이 그려준 작품에 자작 사인을 한 것은 사기며 창작이 아니다. 온통 세상이 사기꾼으로 넘실대는 세상에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예술가의 행위마저 같은 반열이어서 씁쓰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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