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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수의 장학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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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7  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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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퇴계 이황은 48세 나이에 약 9개월 동안 단양군수를 지냈다. 지방 목민관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근무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통례를 깬 것이다. 형 이해(李瀣)가 충청관찰사로 부임했기 때문에 형제가 한 고을의 수장이 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임금에게 체직을 요구한 것이다.

군수시절 단양기생 두향과의 애틋한 일화는 인간 퇴계의 이면이다. 겉으로 두향에게 연모를 고백하지 못한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분 시를 지어 그리움을 숨겼다고 한다. 단양을 떠난 퇴계는 죽는 순간까지 두향을 만나지 못했다.

짧은 기간 동안 퇴계는 엄정하게 집무를 관장했던 것 같다. 자신이 묵는 관아 처소의 벽지가 처음과 같이 깨끗했다는 것을 일화를 보면 검소하며 단정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퇴계는 풍기군수로 부임할 때도 거처하는 방의 도배도 새로 못하게 했다. 관노가 단양 관청 터 밭에서 수확한 인삼을 갔다 바치려고 풍기를 찾아갔다. 그러나 퇴계는 “관전(官田)은 단양 고을의 땅이기 때문에 도로가지고 가서 고을을 위해 쓰라”고 되돌려 보냈다. 인삼 한 뿌리도 취하지 않는 청렴한 성품이었음을 알려 준다.

중종 때 우재 손중돈(孫仲暾·1463~1529)은 상주목사였다. 우재는 기근이 들자 자신의 본가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백성을 구휼했다. 백성들이 우재의 선정에 감동하여 생사당(生祠堂)을 건립했다. 사당이란 대게 사후에 건립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백성들이 공을 생전에 기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종 4년1509년AD)에는 임금으로부터 표리(表裏) 까지 하사받고 좌승지로 승진하였다.

인조 때 청주 미원(米院) 옥화대에서 우유자적한 삶을 살았던 괴산군수 서계(西溪) 이득윤은 청렴한 관리였다. 서계는 논산에 살던 김장생의 수제자로 우암 송시열 선생과는 동문수학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김장생은 우암보다 서계를 더 총애했다고 한다.

서계는 평생 학문을 하는 것을 좋아하여 인조의 여러 번에 걸친 부름을 거절했다. 임금의 어명을 계속 거역할 수 없어 한번은 들것에 실려 한양까지 갔다고 한다. 서계는 매우 청렴하여 임종 시에는 변변한 재산마저 없었다. 그는 임종하면서 무어라고 유언을 했는데 집이 가난하여 형제들이 같이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조선 말 삼정의 혼란으로 탐관오리들이 극성일 때 조재만이란 군수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뜻이 강했다. 영천에 세워진 불망비(순조 27년.1827AD)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략)..고을 사람들 괴로움이 한(限)인들 있으리요...(중략)..우리 원님 인명(仁明)하사 혜택이 많기도 하다. 고질을 두루 소생시키고자 자기 몸같이 보살필 세 4,000문을 던져서 22방(坊)에 나눈 후 이식을 불려서 세금을 갚으니 그 폐단이 멎었네. 포덕(飽德)하여 미칠 듯이 춤추네... 무엇으로 이 은혜 갚사오리. 이 비석아 무궁하라!”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다른 벼슬은 구할 수 있지만 목민관은 구할 수 없다(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라고 했다. 비록 덕이 있어도 위엄이 없으면 고을을 다스릴 수 없고, 비록 뜻은 있어도 지혜가 없으면 또한 다스릴 수 없는 것이 목민관의 자리라는 것을 빗대어 논한 것이다.

지방관서장의 업무가운데 구휼 다음의 우선 사업은 장학(獎學)이었다. 수령들은 매월 관찰사에게 향교에서의 과정의 이행과 교육진도를 보고했다고 한다. 향교를 수리하고 좋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도 수령의 임무였다.

얼마 전 박세복 영동군수가 어머니의 유훈에 따라 모친상 부의금 1억원을 영동군장학회 장학금으로 쾌척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어렵던 시절 박군수를 바르게 교육시켜 성공시킨 모친은 아들에게 항상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당부했다고 한다. 영동군장학회 현재 기금총액은 126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지난 해 만도 2억5천만원의 장학금을 관내 학생들에게 수여했다. 지방 자치단체장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새 봄의 미담이라 고사를 반추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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