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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인기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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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1  19: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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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옛날에는 글 읽는 선비들이 모두 한 가닥 하는 시인이었다.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인이 살던 문학의 천국이었던 셈이다. 어린아이가 천자문을 끝내면 제일먼저 시작(詩作) 훈련을 쌓아야 했다. 시(詩)와 부(賦)를 짓는 능력에 따라 출세의 운명이 갈라지기도 했다.

생육신 김시습은 5세에 세종대왕 앞에서 시를 지어 신동으로 불렸다. 세종은 ‘이 아이의 시는 마치 백학이 푸른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격이로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총명했던 백사(白沙) 이항복은 개구쟁이면서도 시를 잘 지어 이웃집 대감 권율(權慄)의 눈에 들었다. 어린 백사가 지은 시는 호방하며 기백이 넘쳤다. 권율은 백사가 성장하자 얼른 사위로 삼아버렸다.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때문이다. 장인과 사위는 재상의 지위를 같이하면서 함께 충신의 반열에 오른다.

조선 숙종 때 전남 보성에 임재당(任再堂)이란 선비가 살았다. 19년을 함께 한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일기를 기록하면서 부인을 그리는 도망시(悼亡詩)를 지었다. 임재당의 시가 수년전 묘소에서 출토되어 햇빛을 찾았는데 부인을 생각하는 정이 애틋하게 나타나 있다.

“마당의 모과 열매 벌써 익어/ 당신의 영전에 바치니 더욱 슬퍼지네/ 지난날 그대와 함께 모과 열매 보았어도/ 오늘 함께 맛볼 수 없음 어찌 알았으리오(의역)”

조선 최고의 낭만 가인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명기 황진이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의 시를 흠모한 나머지 모처럼 얻은 관직까지 포기했다. 백호는 평양감사로 부임하는 길에 송도 앞을 지나다가 명기 황진이의 무덤 앞에 술잔을 따르면서 시를 지었다. 황진이에 대한 미련이 작용한 것인가. 임제는 한우(寒雨)라는 시를 잘 짓는 기생(妓生)과 교제하며 사랑을 나눴다. 이들은 불후의 화답(和答)시를 후대에 남긴다.

“북창(北窓)이 맑다기에 우장(雨裝)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가 하노라”

“어이 얼어 자리 무삼일로 얼어 자리/ 비단이불 원앙베개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으셨다니/ 녹여 드릴까 하노라”

성격이 포악했던 연산군도 시를 좋아하고 시작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연산은 요즈음의 비서실장격인 강혼(姜渾)에게 시를 자주 하사했다.

“구슬 같은 화월 시구를 잊기가 어렵노니/ 생가를 들을 적엔 이내 마음 경에게로/ 고요한 주루에 야경이 맑기도 한데/ 호탕한 이내 심정 어느 누가 위로할까”

감동한 강혼은 ‘화월로 임금 마음 비치고 싶네(願將花月照宸懷)’라는 시제로 ‘성상께서 심중에 유념하고 계시니, 감격스러운 마음 한이 없습니다’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시인의 나라였던 한국에는 근세에도 많은 시인들이 나왔다. 고인이 된 김소월, 윤동주, 조지훈, 서정주, 박용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로 지금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 84세인 원로시인 고은선생은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평가 받고 있다. 고시인은 매년 노벨문학상 최종 심사에 오르면서도 아직까지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신 뉴요커 온라인 판에 실린 미국 문학 평론가 마이틸리 라오(Mythili Rao)의 ‘한국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라는 칼럼이 화제다. 그는 이 칼럼에서 “한국인들은 문학에 관심이 적다”며 “노벨상에 관심을 두기 전에 한국 문학에 더 관심을 보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원한다”고 꼬집었다.

미국 평론가의 충고를 한번 곱씹어야 봐야 하지 않을 까. 서점에서 가장 팔리지 않는 책이 시집이라고 한다. 한국의 문학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문학을 사랑하는 한국이 돼야 한다. 시인들이 사랑받는 나라가 돼야 국격도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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