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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광개토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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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0  18: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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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고구려가 최고 강성 할 당시 한반도 남쪽에서의 영역은 어디까지 될까. 그동안 학자들은 충북과 경상도 경계인 단양-문경 지역일 것으로 상정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남한 지역에서의 고구려 유적이 다수 발견됨으로써 안동이나 더 남쪽인 경주, 가야지방까지로 확대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구려는 신라와 소백산을 경계로 조우했다. 단양 괴산 청주에 진주했던 고구려군은 소백산을 넘어 북진하려는 신라군과 충돌했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신라-고구려군과의 충돌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5세기 괴산 살수원(薩水原.청천) 전투였다.

한반도에는 ‘살수’라고 이름 붙여진 강이 두 군데 있다. 지금의 북한 평안북도에 있는 청천강과 충북괴산 청천(靑川)이다. 어문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살수란 ‘살살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라는 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살수충돌’이 혼동을 가져 왔던 것이다. 당시 고구려는 살수에서 신라군과 조우, 패한 신라군이 견아성으로 물러섰으며 백제 동성왕의 군사지원을 받고 고구려군이 포위를 풀었다.

살수를 북한 지역 청천강으로 비정할 수 없는 것은 당시 한강을 잃고 공주로 임시수도를 옮긴 백제가 북한 지역인 청천강까지 올라갈 여력이 없고, 신라도 백제와 동맹관계를 맺을 정도로 고구려남하를 경계했던 상황이므로 소백산을 넘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수에서의 신라 고구려 충돌은 괴산 청천으로 비정되는 것이다. 신라가 고구려에게 패하여 후퇴한 견아성은 지금의 상주 화서면 견훤산성이다.

이 살수원에서의 신라-고구려 전쟁은 당시 괴산 지역이 고구려의 강역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가장 큰 영토를 확보했던 광개토왕-장수왕-문자왕 시기 까지 약 140년간 충북의 고구려 거점은 충주, 음성, 단양, 괴산, 청원지역일 것으로 상정되는 것이다.

6세기 초부터 고구려가 대륙의 세력을 방어하는데 주력할 즈음 신라 영주 진흥왕은 소백산을 넘어 고구려 강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차 공격대상이 한강으로 진출하기 위한 죽령, 계립령, 조령이었으며 살수원을 장악하고 달천 – 남한강 수로를 확보하는 과업이었다.

고구려는 달천을 방어하기 위해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진흥왕도 신라 소년 결사부대인 화랑도를 전면에 세워 공격을 했다. 이 결과 신라는 청천-달천을 장악했으며 조령, 계립령, 죽령(단양 적성비)에서도 승전보를 울렸다.

그러나 신라 군사들의 피해도 컸다. 꽃 같은 젊은이들이 이 전쟁에서 수없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진흥왕은 새로 점령했던 신주(新州)를 순수할 당시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외사(外寺)라는 곳에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팔관회를 연다. 공교롭게도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괴산 칠성면에 속칭 ‘외사’라고 불리는 신라 절터가 있어 이곳을 지목하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 평강공주의 부군이었던 장군 온달은 출전하면서 ‘계립령 서쪽의 땅을 찾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그는 신라군과 아차성에서 싸우다 전사했으며 평강공주가 그 시신을 수습하여 다시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가 결사의지로 다시 탈환하려 했던 계립령 서쪽의 땅은 어디일까. 바로 괴산 연풍 칠성 문광 청천 땅인 것이다. 고구려는 이 지역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고구려인들은 괴산을 ‘잉근내(仍斤內)’라고 불렀다. 잉근내라는 뜻은 혹 ‘살수’와 비슷한 뜻은 아닐까. 그들은 조상의 뼈가 묻힌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괴산 문광면 ‘농어촌테마공원’내에 광개토대왕 능비가 세워진다. 광개토대왕 능비는 실물 크기로 건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계자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강화하면서 지린성 광개토대왕 능비 주변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국내 관광객들의 불편을 고려, 능비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일부에서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한 모양이다.

온달이 목숨 걸고 회복하려 했던 옛 고구려 땅 괴산에 영주 광개토대왕의 상징이 서는 것은 고구려 역사를 우리 것으로 지키기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계제에 햇빛을 찾지 못한 괴산 지역 내 고구려 유적 조사도 시도할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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