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몇 해 째 비워 둔 산 밑의 묵정밭에
서울서 왔다는 그 손자라는 이가
읍내 복덕방 노인 대동하고 가끔씩 다녀간다는데
워낙 후미진 곳이라
밭이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는데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살뜰히도 가꾸던 밭이라
그 밭머리의 산에 묘를 써 달라 유언하시고
무덤에 갇혀서도 항시 내려다보며 지키셔서
밭이 팔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는데

주인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듬해부터
밭가에서 살그미 별꽃이 숨어들어 피더니
냉이 씀바귀 꽃 앞 다투어 피더니
망초 엉겅퀴 꽃 환하게 피어나더니
쑥부쟁이도 집단으로 이주해 와 무리 지어
곱게, 곱게도 피어나더니
칡덩굴 인동덩굴 뒤엉켜 자라더니
싸리나무 떡갈나무 싹 틔워 쑥쑥 자라나더니
그 밭, 아예 주인 할아버지 누워계신 산이 되려나 보다
결국 그 산의 산자락이 되려나 보다

 

2010 <문학광장> 등단
만해 한용운 시맥회 시 입상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상
시와소금 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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