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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12  20: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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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묵언(黙言)’이란 불가의 용어에 가깝다. 자비롭기만 했던 부처도 대답할 가치나 필요가 없을 때에는 침묵하였으며 제자들에게도 그런 자세를 지키도록 가르쳤다.

당나라 시대 인도 승 달마는 무려 9년간이나 벽만을 응시한 채 묵언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달마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7천명을 넘었으나 동요하지 않고 묵언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혜가선사가 스스로 팔 한쪽을 자르고 깨달음을 구하자 달마는 묵언수행을 중지했다.

고래로 불가에서는 묵언 정진을 통해 수양을 쌓으며 도를 얻는 것이 코스처럼 되어 있다. 묵언수행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공덕의 높이를 가늠한다.

조선 성종 대 영관(榮觀)이란 스님이 있었다. 8세 때 고기를 잡는 아버지를 따라 어람을 들고 다녔는데 물고기가 불쌍하다고 모두 놓아 주었다. 출가도 부모 몰래 하였으며 덕이산(德異山)에 들어가 고행하는 선자(禪者) 밑에서 행자가 된 후 중이 되었다.

그런데 스님은 무주 구천동에서 9년 동안 머물렀으며 달마의 묵언 유풍을 실천했다고 한다. 항상 앉아서 벽면 수행을 했으며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스님은 유가의 학문에도 정진했는데 노자와 장자 까지 통달했다.

한재 이목(李穆)은 영관이 생존 했을 당시의 학자이다. 그가 지은 ‘빈방에 밝은 빛이 든다’라는 시를 보면 유학자인 그도 ‘묵언’의 풍도를 존중한 듯하다.

“(전략)...오직 도에 가까운 이는 안씨(仲尼-공자)인가 하네 / 종일토록 묵언하여 어리석은 사람인양 하였으나 / 일월같은 仲尼의 도를 즐겼다네 / 아아 지인이 멀리 있음이여! 바른길에 띠 풀이 꽉 막아 답답하구나...(하략)”

세계적인 석학으로 추앙받으셨던 탄허 스님은 올해 열반 32주기를 맞는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 전북 김제에서 유학자 '김율제'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22세로 출가한 스님은 3년 동안 '묵언 참선‘에 정진했고 15년을 구도 했다고 한다.

괴산 화양동에 있는 고찰 공림사에 묵언스님이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부처님오신 날 만큼은 침묵을 깼다. ‘석가모니불’을 연호 할 때는 입을 닫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묵언 스님의 이런 신기한 모습을 보려고 신자들이 찾아가곤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요즈음 안성에서 지개야라는 스님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죽산면에 있는 자신의 절에 '묵언마을'을 세워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출가했다는 스님은 ‘한국에서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한다.'라는 뉴스를 듣고 안 타까운 마음에서 이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

스님은 묵언마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절망적인 사람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스님의 책이 요즈음 서점가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이후 일체 언행을 조심하는 ‘묵언행보’에 들어가 화제다. 그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당이 하나로 결속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 나가는 데 매진 하겠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묵언(默言)’이라고 말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관조하기 위해 묵언수행은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권을 위한 보신용 묵언이라면 소신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지 않을까.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란 서양 격언이 있지만 정치인은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국정에 임해야 한다. 정의를 외면하고 하고 싶은 말도 감추고 처신 한다면 이는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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