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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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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9  20: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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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고대 중국에서는 뇌물을 가리켜 속어로 ‘동취(銅臭)’라고 했다. 엽전을 구리로 만들었으니 이를 빗대서 한 말이다. 후한(後漢)시대 재상 최열이 아들에게 물었다. ‘내가 정승이 된 뒤에 세상인심이 어떠하냐?’ 그때 아들은 아버님에게 ‘동취가 나서 백성들이 모두 싫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일화로 구리냄새가 뇌물이란 용어로 쓰여 지게 됐다고 한다.

과거 역사기록을 보면 ‘동취관리’에게는 매우 엄격한 형벌이 내려졌음이 나타나고 있다. 백제에서는 관리가 뇌물을 받으면 2~3배를 되갚게 하고 평생 감옥형을 살게 했다. 조선시대의 뇌물죄 처벌은 무게단위인 ‘관(貫)’을 적용했다. 엽전이 1관이면 곤장 70대, 1관~5관까지는 곤장 80대, 10관까지는 곤장 90대를 때렸다. 80관 이상을 받은 뇌물 수수자에게는 교수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세종 때 무장으로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김점(金漸)은 동취가 진동했던 인물로 기록된다. 딸이 태종의 후궁이 되자 매관매직은 물론 옥사(獄事)도 뇌물에 따라 처리했다.

그런데 세종대에 김점의 뇌물사건이 터지자 왕은 부왕의 후궁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면서 장본인에게는 ‘4대에 걸친 충신의 집안’이라고 면죄부를 줬다. 형평에 맞지 않는 처벌이었으므로 대간들이 시끄러웠다.
 
세조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충청관찰사 김진지(金震知)등이 의정부, 육조의 유력자들에게 뇌물을 쓴 사건이 발생했다. 뇌물이라고 해야 고작 쌀 10말씩을 보낸 것에 불과했다. 관찰사는 즉시 체포되었으며 뇌물을 받은 정승, 판서 등이 궁궐문 앞에 엎드려 ‘하인에게 준 것을 몰랐다‘고 변명했다.

세조는 뇌물을 받은 관리들이 너무 많아 국정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자 난감해 했다. 임금은 어전에서 ‘관청에 있을 때 친척이나 옛 친구가 주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물며 하인들이 받고서 보고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면서 대관들을 옹호했다.

세조는 ‘한 사람을 죽여서 만 백성을 살리고 그 나머지를 경계함이 옳지 않겠느냐?’하면서 결국은 뇌물을 바친 자 하나만을 목 베었다. 대간들이 임금의 부당함을 극간하고 수뢰자도 처벌하라고 거품을 물었다.

세조는 ‘그렇지만... 조정을 다 고칠 수 있느냐? 하물며 모두 공훈이 있는 장수와 재상이니 이런 일을 특별히 용서하지 않고 무엇을 용서하겠느냐?’고 끝내 고관들을 용서했다고 한다. 사관들은 세조의 형평을 잃은 사실을 실록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경계를 삼는 선에서 후퇴하고 말았다.

성완종 사건은 정치와 돈, 기업과 정치의 물리고 물고 있는 이 시대 ‘동취공화국의 관행이자 자화상’이었다. 여야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려 온 기업회장과 여기에 손을 대고 연명하며 부실을 비호한 정치권, 자립기반을 잃은 기업에게 물 붓기 식으로 퍼준 금융권등 총체적 비리의 복마전이다. 그러나 경남기업의 운명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결국은 국민들에게 손해와 탄식만을 주고 주식시장에서도 퇴출됐다. 어디 이런 사례가 경남기업에만 국한되고 있겠는가.

정치인들에게 ‘죄 없는 자가 저 자를 돌로 쳐라’는 질문을 한다면 자신 있게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용어가 어울린다. 이런 악순환 속에 서 살아온 것이 한국의 정치, 정치인들이다. 이권에 익숙해져 있고 기업과 국민들은 후원에 길들여져 있다. 정치인의 의식과 유권의식이 이제는 바로 서야만 한다.

이제 개혁의 시발점에 와 있다. 박 대통령이 세종이나 세조처럼 자신의 측근이나 집권에 공로가 있다고 해서 봐 주기 식으로 한다면 이는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 기회를 읍참마속의 자세로 삼아 한국정치발전을 한 단계 상승시켜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반드시 ‘동취공화국’의 불명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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