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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해 기념하는 청주학생연합시위(1930)박걸순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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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1.17  12: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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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촉발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 강점기 최대의 학생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이듬해 1월 중순경에는 전국적으로 확산 파급되어 2월말 까지 진정서 제출, 격문 살포, 동맹휴학, 교내시위, 가두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여파는 곧 청주에도 파급되었다.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1930년 1월 20일경 청주고보 학생들 사이에서 운동의 움직임이 있었고, 일경은 이에 대해 ‘특히 엄밀한 사찰’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30년 1월 21일 오전 9시 반경, 청주고보 4학년과 5학년 학생을 제외한 전교생은 일제히 어깨동무를 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277명의 청주고보 학생들은 교사와 경찰의 제지를 뚫고 청주농업학교 방면으로 행진하였다. 이 때 사전 연락에 의해 청주농업학교에서도 5학년생을 제외한 231명의 학생이 조회를 마치자마자 교문 밖으로 행진하여 청주고보 학생들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의 제지로 진로가 막힌 500여명의 학생 시위대는 무심천 일대에서 일경과 대치하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수천 여 매의 격문을 살포하였다. 일본인 학교인 청주고녀에 다니던 조선인 여학생 30여명도 동맹휴학으로 학생연합시위에 동참하였고, 상인들은 철시를 단행하여 학생들의 시위에 호응하였다.

청주고보, 청주농업학교, 청주고녀 등 청주 시내 세 개 학교 연합시위 주도자의 한사람은 이인찬이었다. 그는 박우양·구연행·이범승 등 같은 학교의 학생 및 청주농업학교 학생 박노섭·전충식 등과 만나 양교가 연합하여 조회시간을 이용하여 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거사 전날 밤, 학교 등사판을 몰래 가지고 나와 박우양의 하숙방에서 이인찬, 이범승 등이 이불로 방문을 가려 빛이 새나가는 것을 막고 밤을 새워 여러 종류의 전단을 등사하였다.

이날의 학생 시위로 홍성일·함귀봉·이인찬 등 청주고보 학생들과 전충식·박노섭 등 청주농업학교 학생 등 수십 명이 일제에 검거 당하였고, 이 중 17명이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또한 청주고녀 학생 김봉임 등 10명의 학생들도 1월 24일 일경에 피체되어 장시간 취조를 당하였다. 일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청주경찰서와 각지에서 응원 온 수백 명의 경관으로 하여금 청주고보와 청주농업학교를 포위하게 하고, 시내 요처마다 7, 8명의 경관을 배치하여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이 같은 살벌한 분위기에서 세 학교는 개학을 하였다. 그러나 결석하는 학생들이 많자 학교 측은 단축 수업을 하였는데, 학생들은 구속 학우의 석방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피체된 학생들은 학생이란 신분이 감안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석방되었으나, 3개 학교에서 퇴학 23명을 비롯하여 310명이나 징계를 당하였다.

이 같은 일제 강점하 청주학생연합시위는 청주의 자랑할 만한 항일운동이었다. 따라서 해당 학교에서 이 사실을 학교의 전통으로 내세우고 기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주중학교 교정에는 「항일학생의거기념비」(1971년 최초 건립, 1997년 중건)가, 청주농업학교 교정에는 「청농학생독립운동기념탑」(1982년 최초 건립, 1998년 중건)이 우뚝 서서 학생들의 민족혼을 추앙하고 있다.

잘못된 역사기록 조속히 시정해야

그러나 이 기념비와 기념탑에는 역사적 사실이 잘못 기록되거나 아예 기록이 없는 이상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청주중학교에 건립된 기념비에는 학생 시위일자가 1929년 12월 20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생존해 있던 참가자 증언의 오류와, 이 사실을 일찍이 기록한 󰡔청주지(淸州誌)󰡕(1961)의 오류가 계속 답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신문들은 청주 학생들의 연합시위가 발생한 이튿날인 1930년 1월 22일자부터 2월 중순경까지 연일 청주 학생운동의 내용과 이후 학교의 동향, 피체된 학생들의 검사국 송치 현황, 학생들의 징계 상황 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따라서 청주학생연합시위 일자는 1930년 1월 21일임이 명백한 사실이다.

한편 청주농고 교정에 세워진 기념탑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이 참가 학생들의 명단만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는 기념탑 옆에 기념탑 건립 추진위원과 성금 기탁자 명단을 새긴 비석을 따로 세워두었으니, 무엇을 기리고 기념하자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된 노릇이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념하여야 한다. 특히 자랑스러운 역사는 소중하게 전승해야 할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고 가치이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념물에 새기거나, 정작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기념물 건립자의 현시적 목적을 달성키 위한 기념이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1월 21일이면 청주학생연합시위가 일어난 지 82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잘못된 역사의 기록은 또 다른 왜곡을 파생할 우려가 있다. 매일 그 앞을 지나 등하교 하는 후배 학생들이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애국심을 올바로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기록은 조속히 수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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