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의 한 반도체 필름 제조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24명의 근로자가 누출된 폐염산 가스를 흡입했는데도 회사 측은 관계당국에 신고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소방당국이 거꾸로 먼저 업체를 상대로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사고 발생이 드러났다.

# 폐염산 증기 누출 … 20여명 병원이송

9일 오전 9시41분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의 한 반도체 필름 제조공장에서 폐기된 염산 수용액을 반출하려 차량으로 옮기던 중 가스가 누출됐다. 새어 나온 가스는 주변 공조기에 유입돼 공장 내부로 흘러들어 갔다.

사고가 나자 회사 측은 물을 뿌려 가스를 희석한 뒤 오수를 폐수처리장으로 끌어모아 방제작업을 했다.

이 사고로 공장 근로자 24명이 매스꺼움을 호소, 청주의료원과 하나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근로자들은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폐염산 수용액을 폐기물처리 탱크로 수거하는 과정에서 배관 연결부위를 통해 증기가 빠져나온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사고발생 은폐의혹

업체 측은 유출된 가스가 공장 내부로 유입된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현장에 있던 근로자 전원을 외부로 대피토록 조처했다.

근로자 24명이 이상 증세를 보이자 업체 측은 119구급대가 아닌 회사버스를 이용해 병원으로 옮겼다.

유해화학물질 누출 시 관계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도 업체 측은 사고 사실을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았다.

사고 사실은 병원 등을 통해 알게 된 일부 언론이 소방당국을 상대로 취재를 시작하면서 발생 3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충북도소방본부가 먼저 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고 발생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탓에 청주시와 한국산업단지공단 충북지사, 금강유역환경청 등 관계당국도 뒤늦게 사고현장을 찾아 경위파악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업체 측이 사고 사실을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 건강확인 등 초기 대응을 하는데 시간이 걸려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관계 당국은 해당 업체가 유해화학물질 누출에 따른 사고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 애매한 관리주체 … 대책마련 절실

지난해 청주지역에서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끊이지 않자 청주시는 오송권역 화학물질관리자협의회를 구성했다.

화학물질 취급 11개 사업체가 참여한 협의회는 앞으로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회원 상호 간 정보를 공유하고 사고 발생 시 응급 대응에 필요한 방제약품이나 장비를 인근 사업장에서 긴급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오송권역 협의회가 출범하면서 청주산단, 오창·옥산산단 등 모두 3개 산단 화학물질협의회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 사고가 난 업체는 평판 디스플레이용 패키징 필름 제조 업체로 2005년 오창과학산업단지 내 외국기업투자지역에 입주했다. 1995년 한·일 유명 전기회사가 합자해 설립했다.

외국계기업이라는 이유로 오창산단관리공단이 아닌 한국산업단지공단 충북지사의 관리를 받는다.

오창산단 화학물질관리자협의회에 포함돼있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외국계업체의 관리·감독체계를 강화해야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