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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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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1  18: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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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프로디테는 간통의 화신이다. 그녀는 추남인 남편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신을 찾아가 연애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청교도적 가톨릭을 신봉하는 유럽인 사이에도 난륜의 아프로디테를 미와 사랑의 여신으로 여기는 것은 아이러니다.

진흥왕대 절세의 미모를 지녔던 궁주 미실은 신라 판 아프로디테였나. 그녀는 타고 난 미모로 여러 귀족 미남자들과 잠자리를 한다. 그녀의 첫 사랑은 화랑 사다함이었으나 그가 죽자 여러 사내들을 침실로 끌어들였다. 색공(色供)이란 성적 기부를 합리화하여 진흥왕은 물론 그 아들과도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미실이 도덕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지왕은 유부녀 도화녀를 사랑하여 침실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남편이 살아있으므로 응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기다린다. 그리고 남편이 죽자 밤이면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으며 결국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바로 귀신들과 밤마다 놀았다는 비형랑(鼻荊郞)이다.

간통은 성리학을 중시하고 부터는 철저히 금기시했다. 조선시대에는 기혼 유무에 상관없이 남녀 간 혼외 성관계를 간통으로 취급했다. ‘대명률(중국 明나라의 기본법전)’에 따라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형법을 부과했다.

조선 초기 모선비가 이모와 간통한 사건이 발각되자 두 사람 모두 저자거리에서 효수 되었으며 태조 이성계의 막내아들인 방석의 아내 현빈 유씨와 내시 이만의 간통 사건도 남자는 극형으로 여자는 제주도로 귀양 보내졌다.

세조때 서울에 정경부인이 간통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고관의 처였던 부인은 남편이 죽자 천도를 한다고 자주 절에 드나들었다. 그런데 ‘승려들과 번갈아 사통하고 임신까지 했으며 잠시 친정으로 피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때 승려 하나가 부인 집에 출입하다가 사헌부에 체포됐는데 도첩상자 안에 여자 머리장식 등 증거물이 나왔다. 사헌부에서 ‘부인과 중들의 관계가 의심스럽습니다.’하고 임금에게 추국을 건의하였다. 신문결과 소문이 사실로 결론이 나자 임금은 추상같은 호령을 한다.

“유생(儒生)과 부녀자들이 절에 가면 곤장 100대에 처하라”

성종 때 최대의 성 스캔들은 어우동 사건이었다. 그녀는 본래 양반집 사녀였으나 간통한 것이 발각되어 집을 쫓겨 난 후 저자거리에서 유녀로 살았다. 그리고 당대의 이름 있는 사대부들을 잠자리로 유혹하여 장안을 시끄럽게 했다.

어우동은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극형을 당했으나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했던 사대부들은 대부분 경미한 처벌을 받았으며 2년 뒤엔 모두 풀려났다. 의금부에서 보고한 성종11년 9월2일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태강수 이동이 버린 처 어우동이 수산수 이기와 방산수 이란, 내금위 구전, 학유 홍찬, 생원 이승언, 서리 오종련, 감의형, 생도 박강창, 양인 이근지, 사노 지거비와 간통한 죄는 율이 결장(決杖) 100대에, 유(流) 2000리에 해당한다.“

정조 22년 양반집 며느리와 장용위 병사의 간통사건이 드러났다. 사헌부에서 장용위를 국문했는데 “정말 양반집 부인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노는 여자(遊女)인줄 알고 그랬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서고모의 행악을 견딜 수 없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진술했다. 장용위는 곤장을 맞고 풀려났으나 며느리는 노비가 되어 제주도로 쫓겨났다.

결혼한 사람의 혼외(婚外) 정사를 도덕적 영역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간통(姦通)죄로 형사 처벌해 온 형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간통죄 폐지이후 나이트클럽에서는 환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고 하며 사회일각에서는 개탄의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결과로 전개될지는 기다려 봐야 되겠지만 부부라는 전통적 개념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바람기 많은 아내 조세핀을 무척이나 사랑한 나폴레옹은 외도에 비교적 관대했다고 한다. 영웅은 ‘민법에서 큰 죄로 간주하는 간통 역시 실제에 있어서는 연애의 유희에 지나지 않고 가장 무도회의 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술회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나폴레옹은 2백년 이후 간통죄의 변화를 미리 예견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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