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고대 동·서양에서 화형(火刑)제도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중국에서는 2천여년 전 부터 죄인을 불에 태우거나 끓는 물에 던지는 끔찍한 형벌이 있었다. 일본에서도 17세기경 에도(江戶·도쿠가와 집정)시대에 걸쳐 행하여 졌다는 기록이 있다. 에도막부는 이를 화죄(火罪)라고 불렀다고 한다.

15세기 중반 백년전쟁당시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도 마녀로 인정되어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앙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녀가 불에 타 숨질 당시 나이는 한창 꽃다운 19세.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형벌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봉건시대 한반도에서는 화형을 제도화 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신라사회에서는 민간의 복수나 단죄 수단으로 사사롭게 화형을 시행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3세기 중반 신라 조분왕(助賁王) 때 우로(于老)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왕족으로 무예가 뛰어났으며 고구려와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최고 벼슬인 서발한(舒發汗) 지위까지 올랐다. 친동생인 첨해왕이 왕위에 오를 때 왕궁에서 왜국 사신을 접대하는 잔치가 열렸다. 그때 왜국 사신이 참석한 것을 본 우로는 그들을 꾸짖었다.

“조만간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신라를 공격했다. 왕은 궁궐이 위협 받자 유촌(柚村)이란 곳으로 피신까지 한다. 그때 우로가 왕에게 ‘이번 환란은 소신이 말을 삼가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니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왜군진영으로 말을 달려 나갔다.

“내가 한 말은 농담일 뿐이었는데 이 지경 까지 왔는가? 내가 벌을 받겠으니 군사를 물리 거라”

왜군들은 우로를 붙잡아 화형에 처한 후 철군했다. 그 이후 미추왕(味鄒王) 때 왜국 대신이 서라벌에 오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우로 부인은 왕에게 부탁, 왜국 사신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접대한다. 왜 대신이 술에 취하자 우로 아내는 힘센 장사(壯士)를 시켜 결박하여 불태워 죽였다. 화형으로 처형 된 남편과 똑 같은 방식으로 복수한 셈이다. 대신이 화형을 당하자 왜왕은 군사를 시켜 서라벌을 침공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무열왕 김춘추와 부인 문희의 로망에도 화형이 등장한다. 김유신은 누이동생 문희가 김춘추와 정을 통해 임신을 하게 되자 집안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마침 남산에 올라간 선덕여왕이 이 같은 정경을 목격하고 김춘추를 시켜 급히 문희를 구하라고 명령한다. 선덕여왕이 산에 올라가는 날을 택해 김유신이 일부러 김춘추와 문희의 관계를 알렸다는 해석이 있지만 당시 사회에서 사사로이 화형을 통해 부도덕을 응징하는 풍속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시대 형조에서는 역적이나 중죄인을 상대로 자복을 받기 위해 불심지질(火繩)이나 단근질(烙刑)이라는 형벌을 시행했다. ‘불심지질’은 손가락, 발가락 틈에 심지를 꽂아 불을 붙여 고통을 주는 것이다. ‘단근질’은 불에 달군 쇠로 살을 태우는 고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형벌은 너무 잔인하다고 하여 조선 영조(英祖)연간에 와서 모두 폐지했다.

비무장 민간인을 사로잡아 참수했던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IS가 이번에는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화형’에 처해 세계를 충격과 분노에 빠지게 했다. 요르단은 처절한 복수를 다짐하고 나섰다. 연일 많은 전투기를 동원해 ‘순교자 마즈 작전’을 펼쳐 시리아 동부 라카 등에 있는 IS 군사시설과 무기고를 공격했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군복까지 입고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IS가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화형을 이슬람율법에 견주어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고대 칼리프제국을 꿈꾸는 IS의 무모한 전근대적 역사회귀가 언제까지 지속 될지 의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공분을 사는 조직이나 나라는 결코 오래 존속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