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원로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총리로 내정된 이완구 새누리당 전 원내 총무에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축하 멘트를 보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위로는 임금 하나뿐이고 백성들 가운데서는 제일 위라는 말이다. 그만큼 지위가 높다는 것을 말한 것인데 나라에 무슨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수모를 당하고 총받이가 되는 총리직에 과연 그런 표현이 합당한 것인가는 의문이다.

영의정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은 조선 초 정종(定宗)대. 고려 조직을 개혁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대통령 중심제처럼 실권이 없었다. 모든 권한이 임금에게 집중되고 중신들의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에만 그쳤던 것이다. 영의정은 외교문서나 고열(考閱)하고, 사형수에 대한 복심(覆審) 정도의 실권 없는 직위였다.

까칠한 성격을 가진 인물은 아무리 학문이 깊고 선비들의 추앙을 받아도 영의정에 임명되지 못했다. 두리 뭉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원만한 성품을 택했다.

명재상으로 기록되는 황희정승은 태종이 장자 서열을 무시하고 충녕대군(世宗)을 세자로 책봉하자 목을 내 놓는 극간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세종으로부터 영상에 보임되고 부터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제주에 귀양 가서 세상을 모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철학을 배우고 온 것일까. 황희는 세종의 ‘예스맨’으로 국정을 보좌했다.

조선 중기의 명재상의 반열에 오른 오리(梧里) 이원익은 뛰어난 경륜으로 선조, 광해군, 인조 시기 영의정만 여섯 번이나 했다. 그러나 영상이 되어서도 너무 강직하여 인생행로가 불행했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출시키려 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하다 강원도 홍천에 유배되기도 했다.

조선 선조 대 명재상 백사 이항복도 영의정으로 조정에 폐모론이 일자 이를 조정하지 못하고 한 쪽 편에 섰다 변방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어 쓸쓸히 죽었다. 영상의 임기가 별도로 정해진 것이 없어 영조는 한해에도 수십 명 씩 갈아치웠다고 한다,

인조 대 영상 지천(遲川) 최명길은 지금도 평가가 긍, 부정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지천은 병자, 정묘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으면서 청나라를 배척하기보다는 평화를 주장했다. 불쌍한 백성과 군사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주재하는 절박한 중진회의가 열렸다. ‘싸움이냐 항복이냐’. 지천은 임금에게 주화(主和)를 눈물로 호소한다. 이때 모두 죽더라도 오랑캐와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金尙憲)이 강화 문서를 찢으며 통곡했다. 그런데 영의정 지천이 앞으로 나와 찢어진 문서를 주어서 맞추면서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한다.

“강화의 문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찢어진 문서를 맞추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이완구 총리내정자는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살아온 역정으로 보아 이는 실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과 사안마다 마찰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지사 때처럼 총리직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이 내정자는 필자가 편집국장 시절 경찰청장으로 부임하고부터 알고 지냈으니 30년간을 지켜본 사람이다. 권위적인 경찰청장답지 않게 유화적이었으며 열정적이었다. 고향 충남 청양에서 출마하여 3선 국회의원직을 매우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가 지역에서 인물로 각인 된 것은 충남지사 시절이다. 쉬지 않는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명지사’라는 닉네임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 세종시 엄수에 대한 배수진으로 지사직을 과감하게 버릴 때도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완구의 정치 도전과 모험은 이제 시작이다. 그는 충청지역 대망론의 선두주자이면서 차기 새누리당 잠룡의 대열에 선 것이다. 경쟁자들이 긴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후보군들로부터 태클도 받을 게다.

난제가 산적한 위기의 한국호. 대통령의 지지도 3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완구 총리는 어떤 역량을 보여 줄 것이며 그 열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