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조선 중종 때 순천군수 김정(金淨)과 담양부사 박상(朴祥)이 임금에게 상소한 것이 문제가 돼 귀양을 가게 됐다. 김정은 바로 당대 제일의 명망 있던 충북 보은 출신의 지식인. 왜 이들이 임금의 분노를 산 것인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가 별세하자 계비 책봉문제가 제기 되었다. 이때 김정, 박상 등은 중종의 정비이자 신수근의 딸인 신씨(愼氏)를 복위시킬 것을 상소했다. 더불어 신씨의 폐위를 주장하였던 박원종(朴元宗)을 처벌할 것을 상소하였는데, 이 때문에 탄핵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

젊은 지식인들이 쿠데타를 주도하여 임금을 세운 박원종의 탄핵을 주창한 것 자체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임금에게 목숨을 건 결단을 요구한다. 이 사건은 나중에 사림(士林)들이 몰살당하는 기묘사화가 되는 비극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김정이 귀양을 가자 치열하게 대두 된 것이 바로 ‘언로(言路)’였다. 개혁적 지식인들은 모두 일어나 임금을 향해 집중 포화를 퍼붓는다. ‘김정과 박상을 귀양 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언로를 막는 길이며 임금 스스로가 소통을 막는 것’이라고 항변한 것이었다.

제일 앞장선 것은 정암(靜庵) 조광조다. ‘언로는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이라 주장하여 김정을 귀양 가게 한 이행 등을 파직시키기도 했다. ‘언로는 임금과 백성을 소통시키는 창’이라 극간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묘사화이후 조정에서는 언로가 막히고 임금들이 옳은 말을 해줄 것을 바래도 응하는 신하가 없었다. 올바른 소리를 하면 결국은 화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사화 이후 조정에서는 임금에게 잘못을 상소하는 풍토가 사라지고 선비들은 산간에 숨어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정조(正祖)는 신하들이 침묵만을 고수하자 이렇게 한탄했다. 

“언로(言路)가 요즘처럼 막힌 적이 없었다. 좋은 말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협잡배들이 서로 알력을 일으키는 것은 본래 논할 것도 없고...(중략)기회를 틈타 흉계를 멋대로 부리므로 부득이 사형에 처하거나 법을 적용하였다. 그래서 또한 빈번히 좋은 말을 구하지 못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실로 한탄스럽다.”

이 시대 언로는 어떤 상황이며 언론의 위상은 어떤가. 가장 자유스럽다고는 하나 언론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시대의 탄압상은 적시하지 않더라도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바른 소리를 했다고 위협을 받는다.

기사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죽인다고 협박을 서슴지 않고 폭력과 완력으로 기를 꺾으려 한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이익에 반한 기사를 쓰면 벌떼처럼 몰려와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한다. 언로와 언론에 대한 반민주적 행태가 이 시대에도 판을 치는 것이다.

종교분쟁지역에서는 취재를 하던 비무장 서방 언론인들이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참하게 참수되기도 했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 도심 소재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무장 괴한 3명이 난입, 총을 난사하는 테러가 발생했다. 만평이 이슬람을 비판하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만행이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언론이 권력이나 폭력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데 있다. 언론이 힘이 없으면 언로가 막히고 비판 없는 국가 사회는 파행으로 빠지게 된다. 언론자유가 없는 독재국가가 결국 몰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록 조선왕권 사회였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언로를 텄던 김정과 ‘언로를 막는 것은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 것’이라고 임금에게 항변한 조광조의 절규가 와 닿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