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옛날 사신들이 중국을 갔을 때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새로운 책을 얻고 싶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구하고 싶은 책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중국황실은 도서의 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금지품목의 책이 많았기 때문에 국경에서 이를 감시하는 군인들의 권력 남용이 컸다고 한다. 연경에서 몰래 책을 구입해 숨겨오다 발각되면 황제의 하사품 까지도 모두 압수되는가하면 인신 구속까지 됐다. 이럴 때는 많은 뇌물을 줘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 성종 때 최부(崔溥)는 제주를 가다 풍랑을 만나 중국의 저장성 링보(寧波)에 표착했다. 연경에 끌려가 황제를 알현했는데 황제는 다음과 같은 물건을 하사한다. 그 내용을 최부는 표해록(漂海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예부의 서리 정춘, 왕민, 왕환 등이 와 나의 종자 정보 등 40여 인을 불러갔다. 나는 혼자 옥하관에 머물렀다. 정보 등이 대궐에 들어가서 상을 받고 왔는데, 내가 받은 것은 흰 모시옷 1벌, 붉은 비단으로 속을 댄 원령 1개, 흑록색 비단으로 만든 습자 1개, 청색 비단으로 만든 답호 1개, 가죽신발 1켤레, 털로 짠 버선 1쌍, 녹면포 1필이었다. 정보 이하 42인이 받은 것은 반오(胖襖) 각 1건, 면고 각 1건, 옹혜 각 1쌍이었다.”

이 기록을 보면 많은 하사품목이 있었음에도 책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최부는 처음 중국에 표류했을 때 왜구로 오해를 받았다. 그래서 구금되고 매를 맞는 등 고초가 컸다. 하지만 조선국 사대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경으로 호송되어 명나라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고 극진한 대접 까지 받은 것이다.

조선 선조 때 동지사(冬至使) 조익(趙翊)과 수행원 일행이 받은 황제의 하사품은 다음과 같다.

‘표저의(表紵衣) 각 두 벌, 흑단(黑段) 4필, 황기(黃綺) 각 4필, 청(靑, 청포) 2필 등의 물품이다. 그리고 사신의 옷에는 협금(挾金)을 사용하였고 하사품의 양도 두 배로 하였다. 수행원에게는 다만 견의(絹衣) 한 벌, 청(靑) 2필을 지급하고, 화청(靴淸) 등의 물품도 있었다.’

당시 사신일행에게 내려주는 일상생활 물품도 매우 다양했다. 하루에 양(羊) 네 마리, 거위 네 마리, 닭 여섯 마리를 내렸다. 또 호두 네 접시, 향유 2근 10냥, 염장 각 5근 4냥, 화초 5냥, 쌀 2석 1두 1승, 야채 26근에다 술도 42병이나 되었다. 그러나 책을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도서는 국가의 기밀이며 반출해서는 안 되는 자산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지난 해 7월 서울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총 1만 권 분량의 책, 정기간행물, 영상물을 서울대에 기증한다는 뜻을 밝혀 화제가 됐었다. 그런데 서울대 측은 최근 중국 측으로부터 늦어도 올 3월까지는 장서가 서울대로 들어올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을 전해 온 것이다.

중국 측으로부터 기증 받을 장서 목록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중국의 정기간행물과 공학도서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대한 양의 장서를 한국 대학에 기증한다는 것은 한·중 고금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계제에 유출을 금기시 했던 동북공정(東北工程) 연구서도 포함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시 주석은 국가 간 학문과 지식을 서로 공유할 때 유대도 강화되고 발전한다는 것을 하는 아는 미래지향적 지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