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前 단재교육연수원장

비 오는 날은 /우산 속이 내 집 /내가 달팽이처럼 /집을 짓고 다니네 /비 오는 날은 우산 속이 내 집 /반지훈(청주 남평초 1학년) 어린이 동시 ‘비’의 전문이다. 40여년을 동심과 함께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 눈에 번쩍 띄는 작품과 만나게 된다. 간결함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챙긴 참으로 소박한 진리를 담았다. 그것도 1학년짜리여서 청양(靑羊) 을미(乙未)새해 출발의 기분 좋은 마중물 같다.
 
‘어떤 달팽이 집을?’ 막연하지만 일출은 희망으로 솟고 흰 눈을 군데군데 받쳐 인 나목의 잔가지 위로 내민 하늘이 눈부시다. 다시 만든 세상은 아니지만 생각과 마음 모두 새롭다. 공직을 떠나기 무섭게 달팽이 집을 기둥채 흔들고 그동안 누구보다 어깨 힘주며 비를 피했던 우산(근무처)까지 쪽박 내려는 부끄러움, 몇몇 권력 실세들의 추락이야 말로 조선시대 ‘계방일기’ 여러 쪽을 펴 놓고 실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서연문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천한 책 중 하나다. 여느 경연·서연일기와 달리 세손의 표정, 잡담, 방안 흐름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홍대용과 정조의 문답 기록으로 조선 최고 지성들의 높은 학문과 언행을 역사가 반추하고 있다.

예나제나 직언보다 단소리를 즐겼을 군신(君臣)간 대화, 청와대 문건 유출관련 역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다. 최근 들어 부쩍 탕평 목소리로 뜨거운 것도 권력의 암투에 수술조차 힘든 말기 판정 때문이다. 비선은 뭐고 실세는 또 어떤 끗발인가? 전문성과 천 길도 넘는 사람이 낙하산 타고 내려앉으니 머리에 들은 거라곤 채우기다. 단기간 동안 자금 마련해 다음 선거를 기웃거린다. 누구누구 꼲을 것 없이 굳혀진 공식 아닌가? 그러니 진짜 인재는 뒷전인 채 짝퉁만의 득세를 가늠할 수 있다.

세상사는 갈수록 ‘꼼수’로 요동치지만 그러고도 묵묵하게 굴러갈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교육의 힘이다. 아직, 진행 중인 교육감 선거 후폭풍과 침잠의 우여곡절을 딛고 올린 혁신학교 닻을 보며 일하는 시간 보다 생채기를 내고 그것을 봉합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들이 소비된 몸짓, 너무 고집에 묶여 짙게 드리워진 어둔 그림자로 거슬린다. 왜 스스로 교육을 멘붕 하려 드는가? 무엇이 이토록 힘을 뺐을까 떨떠름하다. 때로는 욕을 먹어도 밀어 붙여야 하지만 낮춤에 익숙하게 팔을 걷어 부치는 사람교육이야 말로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 아닐까?

변화의 봇물이야 비껴갈 수 없다. 구악을 헤어나지 못하면 더 이상 어떤 영양과 칼로리를 기대하겠는가? 너무 서두르지 말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고, 우연한 횡재나 대박 아닌 사랑방 군불처럼 은은한 온기를 펴는 세상, 그 웅비를 기대한다. 서로 안을 수 있는 품, 사람에겐 어울림이 머문 냄새가 살아야 따스한 체온도 느끼리라. 뿌리는 썩는 데, 잎과 줄기만 반복 방제(防劑)한들 무슨 효험 있겠는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 동시처럼 우중충한 날에도 나눠 베고 희망을 소곤소곤할 양(羊)닮은 세상 빚자. 2015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