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前 단재교육연수원장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화에 기여하며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춘 시험으로 공정성과 객관성 높은 대입 전형자료 제공과 함께 대학교육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고도의 정신능력을 측정함으로써 중등교육의 질적 수준까지 높이려는 게 목적이다. 또한 학생 행복을 위해 디딤돌을 놓는 작업으로 대학교육을 향한 자가진단 아닌가? 그러나 역할을 맡은 기관이 법인카드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액수와 사용방식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배만 불리면서 밥값은 못했다는 결론이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지켜 본 사람들은 공통된 한마디로 압축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수능을 폐지하라”는 이유 역시 당연하다.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무책임 때문이다. 문제 오류가 되풀이 될 때 마다 개선안 등, 땜질식 법석을 떨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면 나아지기커녕 오히려 몰매감 아니던가? EBS 교재 지문의 70% 이상을 그대로 베꼈고 변별력도 없어 수시와 정시의 희비를 운(運)으로 돌려야할 ‘괴짜 수능’이란다.

당초 사교육을 없앤다며 EBS에 매달린 방향부터 예상된 좌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부끄럽다. 그러니 아이들 늦게까지 붙들어 두고 TV 화면만 지키도록 한 ‘야간자율학습’만 대박 났다. 교육부가 밝힌 개선 위원회 구성에 대해 “교육부, 한국교육평가원과 긴밀한 카르텔이 형성된 교육학회들은 수능 오류의 당사자들”이라며 교원단체는 ‘그 나물에 그 밥’을 고백하고 나섰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발걸음이 유독 안쓰럽다.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흥분이나 무마차원을 벗어나 ‘끼리끼리’ 수술부터 먼저여야 한다.
교육은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수레와 같다. 어느 시인은 종소리를 ‘천국의 소리’에 비유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엔 제야의 종소리로 묵은 미움을 쪼고 새해 축복을 기리나 보다. 날이면 날마다 교육에 대한 걱정거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교무실 앞에 전교생을 통제했던 추억의 놋쇠 소리, 언제나 희망과 활기로 뒷축을 채찍한 그 종의 ‘땡땡땡’… 모습도 그립다.

학교 울타리 안의 차분한 대응에 맞불처럼 ‘뭣들하고 앉았느냐’며 정신까지 뺀다. 차라리 절반 이상 꾸민 이야기였음 좋으련만 정작 현장 선생님들은 제쳐둔 채 전문가랍시고 해결사처럼 혼란을 부추긴다. 학교 밖에서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흉부가 악화된다. 교권의 깊은 간섭과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교육을 밟는 또 하나의 빌미와 전혀 상관이 없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최대 피해자는 수능 당사자다. 60만이나 되는 수능생,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로 뒤쳐 나오지 않는 그들에게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사실 묘약의 처방은 누구도 어렵다.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핑계에 능숙한 어른들이 더 비겁하다. 이럴 때 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맹물수능’ 에 대한 응분의 문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걸 책임지겠다”며 떠나면 그만이 아니다. “평생을 좌우할 인생 농사를 망쳤다”는 학부모의 분노, 책임을 회피하거나 물 타기로 급급해선 안된다. 이참에 ‘엉터리 수능’에서 벗어나야 옳다. ‘설마’하다가 비로소 죽는 소리니 걱정 떨칠 새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