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병 시조사 교역

추위와 함께 눈이 내렸다. 올해도 호정골에 자주 자주 하늘에서 백설(白雪)의 나라가 내려 왔으면 좋겠다. 겨울하면 눈(雪)이 연상된다. 눈의 서정에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도시인의 감정이라 생각된다. 사람의 순수한 감정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인가?

몇 통의 눈 내리는 날에 단상을 적어보니 그 반응이 확실히 감이 잡힌다. 어린 시절에 도시보다 농촌에 생활에 더 익숙한 어른 세대는 눈에 엊힌 추억을 참 많이 가지고 있다.

저는 남쪽에 살았기에 겨울에 눈을 보기가 참 귀했다. 눈 내리는 날이면 잔치날처럼 마음이 들뜨서 동네 방네 다니면서 아이들하고 눈을 꼭꼭 뭉쳐서 서로 던져서 친구를 맞추기도 하고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눈사람을 만든 기억이 또렷하다.

시린 손을 호호 비비면서 둥글게 둥글게 여러 차례 눈을 굴려서 몸통과 머리를 만들었고 얼굴은 검은 숯을 집에서 가지고 와서 조각을 제작하듯이 하나 하나 완성해서 동네에 가장 잘 보이는 어귀에 전시한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가족 단위로 눈이 내리는 날이면 가족간의 데이트하는 날이고 눈으로 놀이하는 날이였다. 우리집 아이들이 초교 다닐 때 아주 많은 눈이 창원에 내린 적이 있다. 곳곳을 다니면서 설경을 만끽하고 경사가 많은 곳에서는 비닐포대를 깔고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눈썰매를 즐겼다.

그 때 백설의 나라에서 함박 눈까지 펑펑 내리는 것을 배경 삼아 나란히 가족 사진을 찍은 것은 우리 가정의 가장 보배로운 사진이 되었다. 그 사진을 볼 때 마다 가족사랑의 생각이 몽실몽실 자라는 모습이라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족의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게 하는 마술의 사진이 되었다.

이처럼 겨울 눈으로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천연계 안에서 놀이로 즐기던 생각은 부모나 아이들이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 생각된다. 현대는 자연보다는 물질의 우선 순위이고 물질 대소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이나 사람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문화속에 살아 가는 안타까움을 더 한다. 유명 백화점과 호화빌딩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요즈음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천연계를 통해서 배웠으면 좋겠다.

오늘 첫 눈을 맞으면서 감회에 젖어 본다. 첫 눈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우리 마음일테니 첫눈을 바라보면서 우리 소망을 담아 보면 올 겨울은 밖은 춥지만 가슴 안은 따뜻한 겨울을 보낼 것이라 상상한다.

"눈은 가볍다 /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 / 눈이 내리는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김종해 시인의 '눈')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정호승 시인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