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처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효도를 극진히 할 수 있다. 부귀를 보전할 마음으로 임금을 받든다면 그 어디에서도 충성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남과 사귐을 온전히 할 것이다.”

명심보감에 실린 글이다. 이 책은 과거 유교사회에서 어린이들이 공부했던 필독의 서적이 아닌가. ‘명심(明心)’이란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寶鑑)’은 보물과 같은 서적이라는 의미다. 고려 충렬왕 때 학자로서 바른말을 잘했던 간관(諫官) 추적(秋適, 1246~1317)이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추적은 어떤 인물 이었을까. 본관은 추계로 호는 노당(露堂), 시호는 문헌(文憲)이라고 했다. 시호를 받은 것은 훌륭한 인물로 후대에 평가를 받은 때문이다. 노당은 15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다니 천재적인 머리를 지녔던 모양이다.

경상도 안동서기로 관직을 시작하여 왕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사간(司諫)이 되었다. 비리를 보고는 참지 못했던 그는 탄핵을 받은 환관들에 의해 참소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고난에도 불구, 소신껏 간관의 직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추적이 국학교수(國學敎授)로 있을 때 어린이들을 위해 불후의 명저인 명심보감을 편찬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린이들이 천자문을 뗀 후 그다음 공부하는 책이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일을 이루고, 관리가 참으면 승진하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하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깎이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어 진다”

그런데 노당은 명심보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천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공허(空虛)하고, 제후가 참지 않으면 그 몸을 잃고, 관리가 참지 않으면 형법(刑法)에 의하여 죽게 되고, 형제가 참지 않으면 분산(分散)되고,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으로 하여금 외롭게 한다. 친구끼리 참지 않으면 정의(情誼)가 멀어질 것이고, 자신이 참지 않으면 근심이 없어지지 않는다”

화양동에 은거한 거유 우암 송시열은 소년들에게는 명심보감이 있지만 출가하는 딸들이 읽을 책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여 ‘계녀서(戒女書)’를 지었다. 자신의 딸이 14세가 되자 장차 시집에서 지켜야 할 예양과 부덕의 자세를 20개 조로 나누어 적어준 것이다.

“십사오 세 되거든 몸을 감추어 고요한 곳에 처하여, 행실책도 보며, 열녀전을 보며, 글씨도 쓰며,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며 두려워하고 마음을 편케 하며, 말씀을 간절히 하여 재주와 행실 닦으며,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말며, 옳은 일을 행하고 그른 일은 행치 말며, 성현의 가르침을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라, 온화하고 공변되게 행실 닦으면 출가하여도 그름이 없느니라, 부모 앞에서는 개나 닭을 꾸짖지 말라.”

명심보감이나 계녀서는 청소년들의 인성을 가르친 책이다. 세 살부터 천자문을 가르치고 이어 명심보감이나 격몽요결을 수학토록 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여 가정에서부터 조기 교육을 시행했던 것이다. 서당에서는 훈장이 회초리를 상비하고 아이들이 집중력을 보이지 않으면 종아리를 때렸다.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란 그림에서도 이런 풍속이 그려져 있다.

지금 학교 교실현장의 행태는 어떤가. 교사가 머리채를 잡히는가 하면 욕설과 폭행을 당하는 스승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과보호로 자라 부모와 스승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영어나 수학만을 주입식으로 강요당하여 인성을 모르고 자란 결과이다.

왕년의 인기개그맨 김병조씨는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유행어를 만든 이다. 그가 한학에 심취하더니 최근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훈장이 되었다고 한다. 초, 중 학생들에게 명심보감이나 계녀서의 지혜를 가르쳐줄 계기가 많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못됐다고 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