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前 단재교육연수원장

갈수록 살림이 펴야하는데 모두 쪽박을 가리킨다. 그 중에서 땅심만 믿고 살아가는 농심을 보면 정말 딱하다. “어디 밥들을 먹어야 쌀 소비가 되지, 날씬하려면 밥부터 줄여야 한다고 난리법석 아닌가?”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둘러앉아 시시덕 거리는 소리, 귀를 막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별다른 수입 없이 한우 두 마리와 논 몇 마지기 경작하여 팔남매를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은 참으로 용한 분이셨다. 계산은 커녕 본전치기가 어려운 농사로 어떻게 꼬박 먹이고 입혀 학비 한번 밀리지 않은 채 교육을 시키셨을까?

마흔을 넘기자 담배를 피기 시작하신 애닳음, 하나 둘 얽히니 등급을 받기 전 수심부터 차오른 농작물 수매현장 느낌 또한 남다르다. 대부분 농가들 땅은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여 재산권 행사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일년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보았자 인건비 떠먹기 조차 힘겨운 현실이다. 게다가 한․중 FTA로 농민들 시름은 언덕조차 없다. 한 때, 이농 현상을 막기 위해 ‘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겠다며 장밋빛 청사진을 마구 쏟아냈지만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오히려 흉년이 낫다’는 한숨 앞에 무슨 수로 농심을 달랠 건가?

게다가 주말 농장 친환경 농업 등, 그럴싸한 용어에 비해 사실 농민이 아니면 농지 소유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은 농민을 두 번 매장하는 엇박자다. 전업농사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고령이어서 자력으로 경작이 어렵기 때문에 심어서 농약을 뿌리고 수확까지 완전 위탁영농 아닌가? 그 비용 제하고 나면 다음 해 영농비 걱정인데 무슨 돈으로 농토를 매입한다는 건지 앞뒤 모순이다. 농지 규제를 언제까지 귀 막고 있을 것인가? 하루자고 나면 몇 천만원씩 떠먹는 아파트 분양권 거래로 광풍이 몰아쳐도 ‘혁신기업, 행정복합, 웰빙, 행복’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한 신도시 계획으로 몇 되지기 땅은 신고제 허가제에 묶여 농심은 비명소리 낼 기운마저 소진됐다.

아니나 다를까? 김장용 채소 역시 마찬가지다. 불과 몇년 전 “조리사님 김치 안 먹을래요” 급식소에서 자주 들은 소리다. 김치 몇 쪼가리를 식판에 담은 용기있는 (?)어린이 조차 끝내 젓가락을 외면했다. 바로, 가격에 맞춘 저질 중국산 수입김치 때문이었다.

“그동안 당국은 뭘 했기에 여러 해 동안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김치를 묵인했단 말인가?” 김치종주국 체면 쯤은 온데간데 없게 됐고 급기야 자구노력의 결과 어렵사리 종전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최근들어 절임배추의 선호 상승에 힘입어 지차체 마다 경쟁적으로 팔을 걷어 생산과 판매자는 물론 지역 주민까지 나서 흔들린 브랜드를 세웠으나 ‘주문은 줄고 포기당 값이 5백 원도 채 안 되니 씨앗 값 정도의 보상금을 받고 폐기 처분했다’는 시름에 농심마저 거덜나면 어쩔까 걱정이다.

내년도 예산을 놓고 내홍이 심하다. “더 늘여 달라, 왜 깎았나? 끼리끼리 해먹는 것 아니냐? 우리 기관 좀 살려 달라” 씀씀이가 커지니 죽는 소리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를 향해 큰 소리 한번 못 내는 농심을 향한 용기있는 예산, 뜨거운 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