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임진전쟁 때 한반도에 상륙한 일본군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조선 선비들이 평생 수업을 하고 있는 예학(禮學)이나 민가에 사용하고 있던 도자기를 만져보는 순간이었다. 양반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서적과 훌륭한 도자기들을 보고 일본 군인들은 한반도 침공을 후회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 군인들은 많은 서적을 빼앗고 도자기들을 마차에 실었다. 이 시기 발행됐던 퇴계 이황의 문집이나 율곡전서가 일본군에게 약탈됐다. 전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조선 예학에 관심을 갖고 퇴계와 율곡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귀중한 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퇴계, 율곡 연구는 한국보다 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막강한 군부의 손에 흘러간 막사발은 ‘이도다완’으로 불려 일본국보로 대접받고 있다. 일본의 다이도꾸 절 코호암에는 키자에몽(喜左衛門) 이도(井戶)라는 국보급 막사발이 있다. 경남 진주에서 만들어진 서민용 그릇으로 임진전쟁당시 일본인이 가져간 것이다. 이 다완은 다섯 겹의 상자 속에 겹겹이 싸여 성보로 대접받고 있다. 그리고 다완을 친견하려면 한화 3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타(有田) 자기의 도조(陶祖)는 계룡산에서 자기를 굽던 이삼평이 아닌가. 임진전쟁 당시 이삼평은 일본군에 끌려가 아리타 지역에 살며 도자기의 조상이 된 것이다. 이삼평은 처음 생활도자기를 생산하다가 자석 광산을 발견함으로써 일본 백자시대를 열었다.

가고시마현 사쓰마(薩摩)자기도 조선인에 의해 시작됐다. 이곳에 가마가 설치된 것은 이곳 영주(領主)가 심당길(沈當吉) 등 조선 도공들을 데려온 이후부터이다. 심당길의 14대손인 심수관은 선대의 이름을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함)하며 도자기업을 계승하고 있다.

도자기를 잘 만들지 못했던 16세기 일본은 수많은 조선 도공들을 납치해가 도자기 산업을 중흥시킨 것이다. 이곳저곳 산발적으로 살던 도공들은 아리타, 사쓰마 등 지역으로 옮겨와 도자기 타운을 만들었다.

일본 기록을 보면 김해에서 일본에 납치되었던 백파선이란 여자는 남편이 죽자 9백여명의 사기장을 데리고 아리따로 이주해 온다. 백파선이란 하얀 머리 휘날리는 여자 선인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도자기술은 17~18세기 일본의 경제부흥을 일으키는 주요산업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중국이나 인도 유럽에 도자기를 수출, 막강한 외화를 벌어들여 일본근대화를 꾀했던 것이다. 조선의 예학을 정신적 근간으로 삼은 교육을 강화하여 염치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무사정신을 정립했다.

조선은 도공들을 빼앗기고 난후 그나마 계룡산에서 명맥을 유지해 오던 조선 철화, 분청자기 생산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분청 도자기 산업은 더 발전하지 못하고 명맥이 끊어진 것이다. 도자기를 굽는 장인들을 하천시하는 풍조도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원인이기도 했다.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채 실학마저 외면하여 근대화에 뒤지고 말았다.

한동안 인기를 누리던 전통도자기 재현 산업이 최근 극심한 불황을 겪어 단양, 괴산등 충북의 대표적 가마들이 어렵다고 한다. 조선 왕실도자기를 굽던 경기도 광주 사옹원 분원이 있던 남종면 분원리는 수자원 보호구역과 그린벨트, 문화재 보호구역이란 규제로 장작가마 하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도예가들이 이곳 메카에서 둥지를 틀지 못하고 이천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이것이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현주소다.

한국의 전통 재현 도자기들은 정작 본토에서 홀대 받고 외국에서 높은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환경 속에 각고의 정신으로 예혼을 불사르고 있는 한국 도예가들은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급인사들이 우리의 보석을 알지 못하고 홀대한다는 것은 진정 우매한 일이다.